[1874년] 일본의 한국침략과 영국?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일본의 한국 침략에 영국은 무엇이었을까?

1874년 일본의 침략 방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일본은 태평양 방향으로 남진할 수도 있었고, 만주 방향으로 북진할 수도 있었다. 

일본이 1874년 5월에 타이완 출병을 단행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출병은 청일수호조규 위반이었다. 청나라와의 조약에 따르면, 양국은 상대의 소속 방토를 침략하지 않아야 했지만, 일본은 타이완을 공격했다.

일본은 1871년 이리분쟁에서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세력과 충돌한 청국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고, 이는 적중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제동을 건 것은 바로 영국이었다. 영국은 일본의 진출 방향이 자국의 이익이 집중된 중국 남부로 향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따라서 영국은 일본의 방향을 북쪽으로 돌려 놓고자 했다.  일본을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 데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주청 영국공사 웨이드(T. W. Wade)가 대만 원정의 뒷처리를 위해 북경을 방문한 일본 전권변리대신 오쿠보 도시미치에게 한 다음과 같은 언급으로도 알 수 있다. “일본이 대만이 아니라 한국으로 진출한다면 열강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최문형, 한국 근대의 세계사적 이해, 지식산업사, 2010. 40. 


- 1873년의 정한론 논쟁에서 승리한 것은 오쿠보 도시미치를 중심으로 한 한국공격 반대파였다. 

하지만 반-정한론파가 운요호 사건 등을 통해 한국 침략에 나선 배경에는 영국의 응원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873년 당시와는 달라진 사실은 당시에 일본의 조선 침략은 영국의 반대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존재했지만,

74년의 타이완 원정을 계기로, 영국 측의 입장이 제시된 이상,

일본은 영국의 간섭을 걱정하지 않고, 한국 침략에 안심하고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1874년 현재, 일본의 침략은 북쪽이냐 남쪽이냐가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이 나서, 상하이,홍콩을 위협하지 않는 한국 침략에 대해서 영국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다짐을 한 이상, 일본은 안심하고 한국 침략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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