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조슈와 사쓰마의 현실주의?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사쓰마의 사무라이들>

대체로 보면 혁명가들은 이상주의자들이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도 일종의 혁명이라 볼 수 있는데, 그 주도자들은 이상주의자들이기 보다는 현실주의자들이었다는 점이 역사의 역설이라 할 수 있다. 현실주의자들의 혁명이라는 이율배반...

메이지 유신의 지사들은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품은 현실주의자들이었나? 

워런 코헨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

 "조슈 번과 사쓰마 번의 외국 선박에 대한 공격은 1863년과 1864년에 서양해군의 가공할 만한 보복을 불렀고, 광적인 외세 배척 세력을 제외한 모든 세력은 외교정책상의 목표를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프랑스가 쇼군의 군대에 무기와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 사쓰마 번은, 영주의 성이 있는 가고시마鹿兒島가 1863년 영국에 의해 포격당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860년대 중반 영국에 무기와 조언을 요청했다. 두 번은 모두 권력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 젊은 사무라이들을 외국에 보내 서양의 지식을 배워오게 했고 서양의 군사기술과 제도를 도입했다. 막부를 타도하기 한참 전에 조슈 번과 사쓰마 번의 지도부는 서양인을 추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접고 보다 실용주의적인 정책을 채택했다. 그들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워렌 코헨, 세계의 중심- 동아시아의 역사,일조각, 2009. 327.


- 물론, 나폴레옹 3세 시대의 프랑스 외교술의 행보가 눈부실 정도이다. 프랑스는 삿초 동맹과 막부의 대립에서 후자를 했다. 반면에 역시 영국은 전자를 지원했다.  




덧글

  • 역성혁명 2019/07/04 16:46 # 답글

    일본이 위에서의 서구화를 위해 서구열강에 무기와 훈련을 제공받거나 배웠는데, 그 비용을 당시 일본은 어떻게 충당했을까요?
  • 파리13구 2019/07/04 16:56 #

    누가 제공했나요?
  • 역성혁명 2019/07/04 18:59 # 답글

    서구화에는 막대한 비용과 이를 가능하도록 만드는 정치/사회적 안정성, 외부로 들어오는 지식과 세계에 대한 축적과 번역,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서구열강이 우리를 잡아먹을거라는 위기의식입니다.

    일본은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든 상업과 무역의 역사와 경험으로 서구화에 필요한 경제적 토대가 있었고, 네덜란드를 통해 제한적으로 나마 서구 세계와 접촉하면서 번역, 출판, 교육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흑선이 몰고온 강제 개항으로 일본이라는 새로운 먹거리가 생겨나 청으로 향하는 무역 중간 거점으로서 활용되었습니다. 돈이라면 신식무기나 군함까지 판매한 토머스 블레이크 글로버 같은 상인들도 일본의 서구화를 성공시키는데 큰 역활을 합니다.

    나중에 일본이 사실상 서구화 국가로 바뀌었을때는 미국과 영국이 자신들의 경쟁국가였던 러시아를 패배시키기 위해서 일본에게 전쟁비용과 물자를 지원했습니다. 전쟁에 이기도록 편의도 제공해주었구요. 이른바 근대 일본의 탄생에는 그 동안 쌓아 놓은 부와 이를 지탱 하게하는 상업과 무역, 그리고 서구 열강의 이익과 아시아 쟁탈전에서 피를 덜 보기 위해 일본을 직간접적으로 키워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파리13구 2019/07/04 19:02 #

    네, 영국과 미국의 앞잡이가 되어 러시아와 싸운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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