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일본 외상 무쓰의 동학에 대한 인식?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1894년 6월, 한국에 대한 일본군 파병에 대해 해명하기 위해서 일본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는 러시아 공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 무쓰가 주일 러시아공사 히트로보에게 동학에 대해 설명한 것?

 “나아가 무쓰는 현재 조선의 동학당의 반란의 성격에 관해서 길 게 설명하면서 제게 상당히 흥미로운 상세한 사항을 알려 주었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봉기는 무엇보다도 정부에 대한 혐오감. 즉 과도한 징세와 탐관오리의 발호 그리고 폭정 때문에 호응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의 원인들 이외에 현재의 봉기는 아마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어떤 종교적 기초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조선에는 중국 고전의 신탁과 같은 것에 기초한 전설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현재 존재하는 이씨 왕조의 400 내지 500년이 지난 후에는 정씨라는 어떤 존재에 의해서 타도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에 의하면 현재의 동학당의 운동의 선두에는 바로 정씨 성을 가진 15세의 청년이 이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수수께끼의 젊은이에 관해서는 백성들 사이에 다양한 민화가 있으며, 미리 예정된 천재적 소년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조선에서는 이상하게도 이 만들어진 미신과 같은 모든 이야기 들이 거대한 사회정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봉 기의 지도자들은 소외되고 노예화된 주민들 사이에 거대한 인기를 끌 능력이 있어 이들이 보내는 성명서에서 그들은 무력한 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어떠한 강제, 약탈 그리고 강요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단지 관리들에 대항하고, 쓸데없는 유혈을 피하고, 개인의 사유물을 존중하도록 지시하고 있습니다. 이러 한 성명서들 가운데 얼마나 실제로 이행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러나 이러한 출판물 기록을 고려하면 동학당의 지휘자들은 교양 있는 사람들이며 결코 불학무식한 폭도들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운동은 아마도 훌륭하게 규율이 잡혀 있을 것입니다. 최근 수 세기에 걸친 일본인들의 중국과 조선 정부에 대한 증오심은 상하이에서의 조선인 망명자 김옥균의 암살과 도쿄에서의 또 다른 조선인 망명자 박영효에 대한 음모와 간련하여 매우 심각하게 증폭되었습니다. 생전에 일본에서 현저한 인기를 향유하던 김옥균은 현재 이미 전설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소문 에 의하면 그의 친척 특히 그의 동생은 동학당의 운동에서 걸출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밖에 이미 조선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서민층들 사이에 마치 살해된 김옥균의 정신이 조선의 무장 봉기자들로 발현되기나 한 것처럼 다수에게 그러한 전설이 현재까지 점차 퍼져 나가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강성학, 용과 사무라이의 결투 -중(청)일전쟁의 국제정치와 군사전략, 리북, 2006. 263-264.

 - 히트로보는 “정신적으로 모든 일본인들이 공감하는 현지의 반란운동과 이러한 운동에 대한 중국인들의 유혈진압”이라고 보고했다.

- 주일 러시아 공사 히트로보는 동학 운동이 일본과 연계된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덧글

  • 범고래 2019/07/03 00:00 # 삭제 답글

    천우협과 동학이 손잡았다는 썰도 있죠. 무쓰는 이를 알고 저런 말을 한걸까요..
  • 파리13구 2019/07/03 01:57 #

    도쿄의 러시아공사는 일본의 무기가 조선에 건너간다는 첩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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