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일본의 대한정책의 두 가지 경향은?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1892년의 시점에서 일본의 대-한국 정책은 두 개의 주장의 갈등이었다.

1892년 오이시 마사미가 주한 일본 공사로 부임했다. 주한 미국공사 허드 Heard가 오이시의 부임에 대해서 본국에 이렇게 보고했다.

- 주한 미국공사 허드 Heard 의 관련 보고, 일본에서의 대한 정책의 두 경향에 대해서,

“일본에는 항상 두 개의 파벌이 존재해 왔다. 이홍장-이토 협정으로 대표되는 중국과의 평화를 추구하는 세력이 하나이며,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해 온 것이 그것이었다면, 정부 정책에 반대하여 (조선의) 독립을 선호하는 정책이 존재하며, 적극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후자가 힘을 얻고 있으며, 신임 주한 일본 공사 오이시 마사미는 바로 이를 위해 파견되었다고 한다.” 

Hilary Conroy, The Japanese Seizure of Korea: 1868-1910, 207.
   

- 말하자면,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의 화해 정책이 무쓰 미네미쓰- 오이시 마사미의 대결 정책이 갈등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892년 이후 청일전쟁에 이르기까지

후자가 전자를 앞도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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