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일본 인식과 두 개의 프레임?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일본 인식은 두 개의 프레임의 갈등의 산물이었다.

우선, 전략적 관점으로 만주에서의 문호개방을 위협하는 러시아의 침략을 봉쇄하는 역할의 동반자로서의 일본이었다. 루스벨트는 일본을 이용해 러시아를 억제하려 했다.

동시에는 그는 황화론의 영향을 받았다. 전략적 동반자 일본인들은 열등한 황인종이었던 것이다. 물론 중국인에 비한다면 우대할 가치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일본인의 피부색은 황색이었다.

러일전쟁 이후 루스벨트의 인종주의적 일본인식이 강화되었다. 전쟁으로 러시아의 침략이 적어도 일시적으로 저지된 상황에서 일본의 극동전략적 가치가 감소한 마당에서, 캘리포니아 일본 이민자 갈등이 폭발하면서, 그의 인종주의 프레임이 강화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평양 연안에서의 일본 이민자 문제는, 미국에게 잠재적인 전략적 위험이 될 수 있는 영일동맹의 무력화를 위한 도구가 되었다. 영일동맹이라는 전략적 가치를 인종주의를 위해서 무력화시키려 한 것이었다. 런던의 관점에서, 일본은 극동에서의 전략적 동맹이었지만, 일본 이민자의 대량 유립은 태평양 연안의 영연방 국가들에게 위협이 되었던 것이다. 일본 이민자 문제에 관해서, 황화론으로 무장한 영국과 미국은 한 배를 탄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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