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필리핀 인식 변화 배경은?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제국의 영토확장은 그 안보에 이익이 되는가, 아니면 과잉팽창으로 인한 안보의 약점이 될 수 있는가? 

1905년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에서 일본 제국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 통치를 인정하며, 미국은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을 침략하고 한반도를 '보호령'으로 삼아 통치하는 것을 용인했음은 주지하는 바다.

하지만 1910년이 되면 태평양 반대편의 팽창하는 두 제국은 다른 선택을 했다.

1910년
일본, 조선을 합병.

1910년
미국 정부, 장차 필리핀을 독립으로 이끌 생각이라고 선언했다.

1905년 일본이 양해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필리핀 독립이라는 방향을 제시한 배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1906년의 캘리포니아 일본 이민 위기와 1907년의 미일 전쟁 위기와 관련이 있다.

일본과의 전쟁 공포가 고조되면서, 미국은 일본의 필리핀 공격을 우려했고, 이 경우 군도를 보호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인식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미일전쟁 위기를 겪으면서, 루스벨트의 필리핀 인식이 변했다. 루스벨트는 19세기 말에 필리핀 병합을 강하게 주장한 제국주의자였다. 하지만 이제 방어 책임에 대한 부감과 일본과의 전쟁 위기가 매우 다른 관점을 가지게 만들었다.

1907년  8월 21일 루스벨트는 태프트에게, "물리적인 의미에서, 나는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가치도 없거나 혹은 그들이 어떤 가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따라서 필리핀 군도를 가능한 빨리 독립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리핀은 우리의 아킬레스 건이다. 그들이 일본과의 현재 상황을 위험하게 만든다. 나는 당신이 그들에게, 만약 그들이 입법부를 현명하게 이끌 능력을 보유하게 되면, 우리는 가능한 빠르게 그들에게 거의 완전한 독립을 제공할 것이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처-
Raymond A. Esthus, Theodore Roosevelt and Japan.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1967. 194-195.

미국의 필리핀 독립정책은 1906-1907년의 미일전쟁 위기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의의에 대한 재고도 필요하다고 본다.

밀약에도 불구하고 루스벨트 정부가 대일 필리핀 안보에 대해 우려했던 것처럼,

일본의 한국병합에 대한 미국의 지지여부도 유동적이었고, 이것이 일본의 불안 요인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일본의 한국 병합에 대해서, 과거 삼국간섭과 같은 열강의 방해공작이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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