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이토 히로부미의 우울과 절망?"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일본 사회가 여전히 러일전쟁 승리의 환희에 도취해 있을 동안,

1907년 11월, 이토 히로부미는 왜 제국이 위기에 봉착했다고 생각한 것인가? 이토는 왜 일본을 둘러싼 국제정세에 대해 비관적이 되었는가?

그 위기란 바로 미국과의 캘리포니아 일본인 이민자 갈등이었다. 

11월, 이토는 외무장관 하야시 다다스에게 다음을 지시했다. 

“제국의 현재 지위는 당국자가 가장 우려해야 할 것”이며, “세계의 대세는 거의 일본을 고립시키지 않으면 그치지 않을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정책이 적절하지 못하고, 행동을 잘못하면 곧 재액이 닥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1) 일본이 서양과 협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고립은 심화된다는 것이었다.  

캘리포니아 이민 갈등에 대한 이토의 해법은 타협이었다. 즉 이토는 미국에게 일본 이민을 규제할 수 있는 사실상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 11월 6일의 비망록에서 이토는 하야시에게, 미일관계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 이민 문제에 대해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3) 

일본인 이민자 문제로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동맹국 영국도 과거와 같이 영일동맹을 중시하지 않게 되었다. 4) 

1907년 11월 이토 히로부미가 국제정세에 대해서 절망감을 느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1908년을 계기로 일본의 정책은 하와이,캘리포니아 방면의 진출을 자제하고, 대신에 대륙주의를 추진하는 것이 되었다.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대륙주의의 중심무대가 될 만주에서 일본은 다시한번 거대한 걸림돌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이른바 문호개방 정책이었다. 미국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만주로 눈길을 돌리려 한 일본이지만, 다시한번 미국의 견제가 만주에서 일본의 발목을 잡았다. 

일본이 확장하려 하는 곳에서 미국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은 20세기초의 일본에 대한 미국의 "봉쇄정책"이었는가?

"쿠오 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1) 이리에 아키라, 일본의 외교, 푸른산,1993. 28-29.

2) Akira Iriye ,Pacific Estrangement: Japanese and American Expansion, 1897-1911, 135.

3) Akira Iriye ,Pacific Estrangement: Japanese and American Expansion, 1897-1911, 135.

4) 이리에 아키라, 일본의 외교, 푸른산,199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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