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동맹과 미일의 이민자 갈등?"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이리에 아키라의 책을 읽다보니,

영일동맹과 미일의 일본 이민자 갈등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

1902년의 영일동맹 결성에 대해 미국은 긴장했다. 미국 해군은 1902년의 영일동맹 탄생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졌다. 동맹은 이론적으로 아시아의 두 나라 강대국 해군의 결합을 의미했다.

미국은 영일동맹의 무력화 방안을 고심했다.

이를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태평양 일대에서의 일본의 확장주의였다. 일본 이민자의 유입으로 하와이와 미국 서부해안에서 인종갈등이 발생했다. 이런 양상은 태평양 일대의 영연방 국가에서도 유사했다.

영일동맹에도 불구하고, 인종갈등이 고조되면, 영국은 영일동맹이라는 전략적 가치보다는, 앵글로-색슨인의 유대라는 인종주의적 가치를 더 강조할 것이라 기대되었다. 일본 이민자 문제에 대해서는 영국은 미국과 한 배를 탄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미국은 일본 이민 분쟁을 통해서, 영일동맹을 견제할 수 있었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캐나다 뱅쿠버에서 반일 폭동이 발생하자, 미국 당국자들은 "환호"했다.


참고-

Akira Iriye ,Pacific Estrangement: Japanese and American Expansion, 1897-1911 (Harvard studies in American-East Asian relations), Harvard University Press,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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