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 1894년의 일본과 국제법? Le monde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일본은 청일전쟁을 문명 대 야만의 대립으로 규정했다. 문명을 대변한다고 주장한 일본은 문명의 표준인 국제규범을 준수하려 했다. 

이러한 점을 의식하여 일본의 정책결정자들은 당대에 인정되고 있었던 전쟁 관련 국제규범을 애써 준수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1894년 8월, 청일전쟁 개전 선포에 즈음하여 이토 히로부미 수상은 당시 독일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육군대학에서 국제법을 가르치고 있던 나가오 아리가를 법률 고문으로 초빙하여 선전포고의 합법성에 대해 자문을 받았다. 아리가의 설명에 깊은 인상을 받은 이토 수상은 다시 그를 만주에서 작전 수행 중이던 제2군 사령관 오야마 이와오(大山巖)의 법률 고문으로 파견하여 법적인 자문 을 행하게 하였다.27) 오야마 사령관은 나가오 아리가의 국제법 자문에 준해 청국 포로나 부상자를 대우할 것을 예하 부하들에게 지시하였다.

출처-
박영준 (2014). 청일전쟁 전후 일본의 대외전략과 군사정책. 한국정치외교사논총, 36(1),108-109.




덧글

  • 꾀죄죄한 하프물범 2019/05/22 17:26 # 답글

    동학농민군과의 전투 때는 민간인 대상 포함해서 꽤 잔인하던데 그들은 굳이 국제법을 적용 안 해도 되는 것으로 봤으려나요..
  • 파리13구 2019/05/23 17:23 #

    청일전쟁 때에도 중국에서 일본군의 민간인 학살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국제사회에 자신은 국제법을 준수하는 문명국가의 군대라고 주장하려 했습니다.

    그것은 근거가 최소한 존재한다고 봐야 합니다. 문명국 흉내를 내려고 한 일본이었기 때문입니다.
  • 꾀죄죄한 하프물범 2019/05/23 22:42 #

    흔한 제국주의 문명국으로 발돋움하고 싶어하던 일본의 욕망이 드러나는 사례겠군요.. 대한제국도 독립신문 등의 중국 대상 태도나 고종의 간도 영유 시도 등을 보면 만약 여건이 됐다면 시도했을 수도 있겠고요. 어쨌든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