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중일전쟁과 호주,뉴질랜드...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런던의 영국 정부가 극동에서 일본과 화해에 관심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이는 영연방의 호주와 뉴질랜드의 견제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중일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극동에서 호주 지도자들의 관심사는 중국이었고, 일본에 대항한 중국의 투쟁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했다. 왜냐하면 일본을 중국에서 발목이 잡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1941년 여름에 중국의 중경정부에 파견된 호주 공사는 도쿄의 호주 공사와 같은 직급이었다. 

41년 9월, 캔버라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중국을 원조해야 한다고 런던에게 요구했다. " 우리의 행동이 행동을 주저하는 미국 때문에 지체되선 안 된다." 

중국 주재 영국 관리들의 지지를 받아 장개석도 유사한 압력을 런던에 행사했다.


출처-

Christopher Thorne, Allies of a Kind: The United States, Britain, and the War Against Japan, 1941-1945, Oxford University Press, 1979.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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