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윈스턴 처칠과 프린스 오브 웨일스? Le monde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극동에서의 일본의 도발에 대한 처칠의 자신감의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중요했다. 일본인에 대한 인종적 우월감이 하나였다면, 영국 해군력에 대한 자신감이 다른 하나였다. 즉 일본이 감히 영국을 상대로 도발한다고 하더라도, 영국이 해군의 자랑 "프린스 오브 웨일스"를 보내면, 겁을 먹고 물러날 것이라란 믿음을 총리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941년 12월, 바로 그 순간이 왔다.  

영국 육군참모총장 앨런 브룩은 당시 사건을 이렇게 기록했다. 

그러나 I2월 10일 아침 프랑스 붕괴 이래 최악의 뉴스가 날아왔다. 수상이 스탈린에게 호언장담한 바 있는 “어떠한 일본 해군 함정이라도 이를 포착하여 격침시킬 수 있다”라고 한 ‘프 린스오브 웨일스’와 ‘리펄즈’가 공군기의 엄호도 없이 말레이 해안 해역 에서 일본수송선단을 공격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중 뇌격기에 의해 격침되었다. 

싱가포르를 구출하려던 처칠의 대담한 도박은 나르비크,그리스 및 크레타 섬에서 있었던 작전과 같은 패배의 길을 따라갔다. 

이날 밤 브룩은 썼다. “이로써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인도양과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이르는 제해권을 상실했다."


참고-

아서 브라이언트, 워 다이어리- 영국 육군참모총장의 일기로 본 제2차세계대전, 플래닛 미디어, 2010. 337.


- 그럼에도 불구하고 윈스턴 처칠의 장점은 이런 것이었다.

"총리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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