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처칠은 일본을 어떻게 무시했는가? Le monde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태평양전쟁 초기에 영국이 일본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은 일본인에 대한 영국의 인종적 비하와 관련이 있다. 영국은 열등한 아시아인종 일본이 감히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윈스턴 처칠도 마찬가지 였다. 그는 일본의 공격 가능성을 끊임없이 평가절하했고, 싱가포르 무장 강화를 위한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했다. 

1939년 11월, 처칠은 싱가포르는 요새이며, 일본은 그것을 점령하려고 시도하는 "미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다. 

1940년 8월, 처칠은 호주와 뉴질랜드 총리에게, 일본은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만약 독일이 영국 본토 침략에서 성공하지 않는다면 그럴 것이라 말했다. 이 믿음은 1941년 4월의 국방위원회에서 반복되었다. 

41년 7월, 처칠은 내각에, 싱가포르에 대한 일본의 공격에 대해서, 본인은 이런 종류의 일이 모의되고 있다는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9월에, 호주와 뉴질랜드 총리에게 그는 "나는 일본인들이 현재 그들을 둘러싸고 만들어지고 있는 (외교적) 조합에 맞설 것이라 믿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10월에 처칠은 "일본이 미국과 우리를 상대로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독소전쟁 이후, 처칠은 일본의 발목을 잡는 새로운 조건을 추가했다 : 소련과의 결정적 결별.

11월 12일, 주일 영국대사 크레기가 일본이 전쟁을 도발할 수 있는 심각한 위협에 대해 본국에 경고하자, 처칠은 이를 "가능하지만, 그럴것 같지 않은 위협"으로 해석했다.


출처-

Christopher Thorne, Allies of a Kind: The United States, Britain, and the War Against Japan, 1941-1945, Oxford University Press, 1979. 56. 



덧글

  • 포스21 2019/04/07 20:43 # 답글

    프린스 오브 웨일즈가 침몰한 뒤에도 그런 견해를 고집했는지 궁금하네요.
  • 파리13구 2019/04/07 20:47 #

    물론 사실은 아니지만,

    침몰시킨 비행기를 조종한 것은 독일인이라 믿었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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