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일본 군사력에 대한 미국의 정보 부족?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진주만의 전야에 서양은 일본 군사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했다. 민간인은 물론이고, 군부도 그랬다. 

일본의 낯선 문자가 미국의 정보 획득에 어려움을 주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어학 장교,무관,교환 장교 등 일본통 장교의 배출을 등한시했다. 

가령, 1920-1941년의 22년 동안, 미국 육군은 7명의 무관과 42명의 어학 장교를 도쿄에 보냈다. 어학 장교였다가 무관이 된 것은 한 명 뿐이었다. 루푸스 브라튼은 1922-26년 동안 어학 장교였다가, 이후 주일 무관이 되었다. (1933-1937) 시드니 매쉬비어는 1922-1924년 동안 어학장교였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자신의 일본어 능력으로 활약했다. 

대체로, 1941년 중반까지 미군의 첩보 요원 수가 매우 적었고, 대부분이 휴민트에 종사했다. 부족한 첩보를 가지고 적의 능력에 대한 믿을만한 정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미국의 육군과 해군의 첩보장교는 10여 명에 불과했다.  


Allan R. Millett, Williamson Murray (eds.), Military Effectiveness, 2 edition (Volume 3), Cambridge University Press,2010. 1.



덧글

  • 2019/05/05 14:4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5/06 02:3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9/05/06 02:3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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