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계 미군 병사의 동원과 전후 보상? Le monde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일본에 항복한 미군과 필리핀계 병사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군으로 동원되었던 조선계 퇴역 군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무시가 문제시 되어왔다.

비교를 위해서 그 전쟁에서 미군을 위해 동원된 필리핀계 군인에 대한 미국의 대우와 보상에 대해 알아보자.

다카시 후지타니에 따르면, 약 20만 명의 필리핀인들이 미군에서 복무했으며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주류언론의 보도는 필리핀에서 수행된 연합군의 활동을 위해 필리핀인들이 공헌하고 희생한 사실을 거의 언제나 주변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일본의 바탄 반도 공격에 맞서다 죽은 연합군 병력의 약 90퍼센트는 필리핀 사람이었다. 그리고 바탄 죽음의 행진(Bataan death march, 1942년 4월 9일 일본군 이 미군과 필리핀군 포로를 이동시키며 수많은 사망자를 낸 일 )으로 죽은 7,000명에서 1만 명 중 필리핀인은 거의 600명 이나 되었다. 바탄을 넘겨준 직후,식민지 본국인 미국에서 필리핀인의 용기는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1942년 2월,미국에 거주하는 필리핀 사람을 참전시키기 위해 필리핀인 1보병연대와 2보병연대가 편성되었다.1942년 3월,전쟁수행권한법은 군대 내의 비-시민권자들에게 여러 공식적인 절차를 생략하고 미국 시민이 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하지만 미국이 승전한 후, 필리핀 출신 퇴역군인들의 전쟁 기록은 공공의 시야와 기억에서 급속히 멀어졌다. 1946년 2월의 무효법Rescission Act을 통해 의회는 미군과 함께 싸운 필리핀 병사들에게 미국 시민이 되어 퇴역군인수당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약속을 철회했다. 이 법은 필리핀 공화국 육군과 미국의 인가를 받은 게릴라 부대 활동이 “퇴역군인 수당을 위한 현역 복무로 간주되지 않음” 을 특별히 명문화했다. 따라서 수만 명의 필리핀 퇴역군인들은 다시 한 번 시민권의 자격을 갖기 위해, 1990년에 미국 이민과 귀화법the U.S. Immigration and Naturalization Act이 통과될 때까지 거의 45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을 위해 싸웠으나 대부분 가난하게 사는, 이제는 늙은 필리핀 사람들이 재향군인관리국이 주는 정식 수당을 받을 자격은 2011년까지도 여전히 없었다.


출처-

다카시 후지타니, 총력전 제국의 인종주의-제2차 세계대전기 식민지 조선인과 일본계 미국인, 푸른역사, 2019. 358-359.


 - 유사한 현상은 프랑스 제국과 북아프리카 식민지 관계에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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