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야먀모토 이소로쿠의 한탄...ㅠ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41년 9월까지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미국과의 전쟁을 막기위해 노력했다. 만약 그가 해군대신 혹은 군령부 총장이었다면, 아마도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군인철학에 따르면, 연함함대 사령관은 명령이 내려지면, 그것을 실천하는 자리이지, 정책에 반대하는 보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41년 10월, 야마모토는 마치 고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개인적으로 반대한 전쟁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햐 한다는 것.

작전 계획을 수립하면서, 그는 해군 주류의 시대착오성에 대해 한탄했다. 그의 몇몇 믿을만한 부하들에게, "해군 군령부는 메이지 시대 (1868-1912)의 전략 사고에 여전히 물들어 있다." 거함거포주의를 기반으로 한 단기결전 사상. 

"항공기의 부상과 더불어, 전함은 장식품이 되었다. 하지만 해군은 여전히 함대 결전으로 미국 전쟁에서 이기려 든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해군 주류의 관점에서 야마모토는 이단 전략가였다. 아마도 야마모토의 지위가 약간 더 낮았다면, 바로 군복을 벗었을 것이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해군 군령부가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고, 추종자도 제법 있었다.  


참고-

Sadao Asada, From Mahan to Pearl Harbor: The Imperial Japanese Navy and the United States, 278.



덧글

  • 無碍子 2019/03/22 16:33 # 답글

    미일개전(진주만공격)은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우겨서 결정된거로알고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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