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리처드슨, 함대의 하와이 배치에 반대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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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해군의 리처드슨은 진주만 기습의 비극을 예견했다는 이유로 좌천당한 것인가? 

제임스 리처드슨 James Otto Richardson (18 September 1878 – 2 May 1974) 은 미국 해군 제독으로, 1941년 2월까지 미국 함대 총사령관이었다. Commander in Chief, United States Fleet (CinCUS)

그는 태평양함대의 진주만 배치 문제로 루스벨트와 갈등, 좌천당했다. 이전까지 함대는 캘리포니아의 샌디에고에 있었다. 

미국 해군의 인재였던 리처드슨은 1940년 1월, 해군 최고위직에 올랐다. 미국 함대 총사령관. 

그런데 4월이 되자, 루스벨트가 이전까지 샌디에고에 있던 미국 태평양 함대를 진주만으로 이동 배치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일본의 팽창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군사적 억제정책이었다. 해군 작전국장 스타크는, 하와이로의 함대 배치는 “동인도를 향하는 일본에 대한 억지력을 위한 것”이라 말했다.

미국 해군에서 최고의 일본 해군 전문가였던 리처드슨은 즉각 반발했다. 1934년 해군대학에서 그의 석사논문 에서 "진주만은 일본 해군 군령부의 논리적인 첫번째 공격 지점이다. 선전포고 없는 기습 전쟁의 이론에 따르면 그렇다."고 그는 주장했다. 

리처드슨의 이후 자서전에서, 1940년에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 당국자들,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함대의 하와이 배치로 일본을 견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회고했다. 이런 결정을 하면서, 대통령과 국무장관은 해군의 고위 담당자에게 의견을 묻지 않았고, 결정사항을 명령했다고 그가 회고했다. 

1940년 10월 초, 리처드슨은 호놀룰루에서 워싱턴을 방문, 루스벨트에게 자신의 주장을 전달했다. 루스벨트는 일본과의 전쟁이 가까운 장래에 없을 것이라 말했다.

1941년 초에, 리처드슨은 자신의 직위를 걸고, 루스벨트와 다시 만났다. 그는 "해군의 고위 장교로, 태평양에서의 전쟁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서 민간인의 지도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고 루스벨트에게 항의했다.  그는 진주만이 일본의 공중,어뢰 공격에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루스벨트의 인내심의 바닥을 건드렸다. 그는 리처드슨을 함대 사령관 직에서 즉시 해임시켰다. 대신에 그는 체스터 니미츠를 사령관에 임명하려 했지만, 니미츠가 사양했다. 






덧글

  • ㅇㅇ 2019/03/22 12:09 # 삭제 답글

    결론적으로 루즈벨트가 맞았네요..진주만 공격은 당했지만..결국 진주만 기지는 살아남아서 일본에게 반격했으니..
  • 파리13구 2019/03/22 12:10 #

    만약 항모가 당했다면요? 미드웨이가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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