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고노에, 삼국동맹 그리고 해군?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일본 제국의 역사에서 1940년 9월의 삼국동맹은 중요한 결정이었다. 미일전쟁과 일본의 동남아 침략의 뿌리가 여기에 있었다. 

삼국동맹 당시 일본 총리였던 고노에 후미마로는 이후 삼국동맹이라는 오류를 해군 탓으로 돌렸다. 

고노에는 삼국동맹 논쟁에서 해군이 미국을 감당할 수 없다고 끝까지 주장해 주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당시 고노에는 왜 해군이 삼국동맹에 동의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이후에 이렇게 질책하자, 당시의 해군 부대신 도요다가 "해군은 마음속으로 삼국동맹에 반대했다. 하지만 해군은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하여 더 이상 반대를 주장할 수 없었다. 따라서 해군은 억지로 동의했다. 해군이 정치적 동기로 그랬다고 하더라도, 군사적 관점에서 해군은 미국과의 전쟁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당황한 고노에는 "우리 정치인들은 국내 정치에만 책임을 진다. 당신네 해군은 엄격히 군사적 관점에서 문제를 봐야만 했다. 만약 당신들이 미국과의 전쟁에 확신이 없었다면, 삼국동맹에 끝까지 반대했어야 했다. 이것이 국가에 충성하는 유일한 길이었다."라 말했다.

결국 미국과의 전쟁은 해군 담당이었다. 그리고 당시 해군대신이었던 오이카와는 정치가들에게 해군의 대미 전쟁 능력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만약 오이카와가 1939년에 요나이가 그랬던 것처럼, 해군은 미국과 전쟁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면, 40년의 삼국동맹은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출처-

Sadao Asada, From Mahan to Pearl Harbor: The Imperial Japanese Navy and the United States, Naval Inst Pr; 1st edition (September 1, 2006) 224.

마루야마 마사오에 따르면, 

"나약한 의지의 완벽한 사례로, 대부분의 독자들은 물론, 고노에 후미마로를 떠올린다. 그의 정치 경력은 확실하게 의지 박약이 중요한 순간과 조우할때 어떻게 치명적으로 작동하는지 풍부한 사례를 제공한다. 기도 고이치의 증언에 따르면, 난해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고노에의 대답은 "나는 포기하고 싶다." 였다."


출처-

Masao Maruyama , Thought and Behavior in Modern Japanese Politics, 97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