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황도파 청년장교들의 어리석음이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육군 황도파가 이른바 쇼와유신을 통해서, 일본이 소련과 전쟁하여, 만몽 문제를 군사력으로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치자.

이를 국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해군을 설득해야 했다. 그런데 당시의 해군 주류는 함대파로, 그들은 미국과의 전쟁도 각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육군의 황도파의 입장에서, 소련과 전쟁하여 대륙으로 치고나가기 위해서는 미국과 영국과의 관계가 중요했다. 

따라서, 황도파 입장에서 함대파 견제를 위해서는 조약파라는 해군의 균형세력이 필요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36년 2월 26일 반란사건에서 청년 장교들이 공격한 것이 누구였나? 해군 3인방이었다. 즉 육군 황도파 암살이 표적이 되었던 해군 원로3인방, 스즈키 간타로, 오카다 게이스케, 사이토 마코토는 온건파로, 런던 해군조약을 지지했다. 그들이 36년에 암살의 표적이 되었다. 

함대파의 관점에서 36년 2-26사건을 보자. 이것은 차도살인이었다. 3인방이야말로 해군이 미국과의 전쟁으로 향하는 것을 견제할 힘이 있었는데, 황도파가 조약파 핵심을 제거하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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