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해군에 대한 도고 헤이하치로의 분탕질?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좋은"? 메이지 시대의 영웅 도고는 쇼와 시대에 어떤 행동을 했는가? 

<언덕위의 구름>의 시바 료타로의 역사관이란,  ‘활력 넘치고 건강한’ 메이지 시대(1868~1911)에 대한 향수를  쇼와 시대(1926~1989)가 되면서 메이지 시대의 ‘건강했던’ 일본 민족주의가 군부에 의해 파시즘과 전쟁으로 변질된 것과 대비시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좋았던 메이지와 타락한 쇼와가 이른바 시바 사관의 핵심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좋은 메이지와 타락한 쇼와의 대비 역사관을 균열하는 것이 바로 도고 헤이하치로의 경력이다. 적어도 좋은 메이지라도 쇼와 시대로 넘어오면 타락하고 만다는 것을 보여준다. 

러일전쟁의 쓰시마 해전의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 만큼 "좋은"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러일전쟁 이후 패전에 이르기까지의 일본 해군의 운명과 관련해서, 러일전쟁의 승리 이후 도고가 보여준 행보는 일본 해군에 악영향을 주었다. 전쟁 이후 그는 일본에서 반-신 半神 이 되었다. 특히 해군 정책에 대해서는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1930년의 런던 해군 조약 이후에 도고는 함대파의 가토 간지와 손을 잡고, 쇼와 해군의 군국주의화의 선두에 섰다. 

그 희생양은 가토 간지 이후 해군 군령부 총장이 된 다니구치 나오미 Taniguchi Naomi 였다. 1931년 만주사변이 발발하자, 다니구치는 군령부장 자격으로 만주사변을 반대했다. 이 사건 때문에 미국과의 전쟁 위기가 초래될 수 있고, 이 전쟁에서 일본이 이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미국과의 전쟁 준비를 위해서, 일본은 35억 엔을 해군 군비에 투자해야 하는데 이는 국력 밖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자 도고가 개입했다. "해군 군령부장은 천황에게 연례 작전 계획을 제출하지 않는가? 만약 우리가 미국과 싸울 수 없다면, 우리는 폐하께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나도 매년 폐하께, 연례 작전이 국방을 위해 적당하다고 말씀 드린다. 만약 우리가 미국과 싸울 수 없다면, 나도 거짓말장이가 된다."

불행했던 다니구치는 사임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사건이 후에 오이카와 코시로에게 영향을 주었다.  1940년 오이카와가 해군대신일 동안, 그는 다니구치 처럼, 일본 해군은 미국과 싸울 수 없었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없었다. 

만주사변을 계기로, 함대파의 가토 간지와 스에쓰구는 육군의 대륙 정책 성공을 위해서, 바다에서 일본 해군이 미국의 위협을 견제해야 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 해군 예산의 증가와 군비 증강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주장했다.


참고-

Sadao Asada, From Mahan to Pearl Harbor: The Imperial Japanese Navy and the United States, Naval Inst Pr; 1st edition (September 1, 2006) 18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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