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이노우에, 일본 해군 선각자의 운명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41년 1월,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일본 해군 항공대의 아버지라면, 그 "어머니"라 할 수 있는 이노우에 시게요시가 해군대신 오이카와에게 중요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에서, 이노우에 시게요시는 미국 잠수함의 공격으로부터 남방 지역에서 일본 본토로 오는 대양 수송망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 해군 주류는 해상 수송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러일전쟁,제1차세계대전,중일전쟁 동안 일본이 적 잠수함에 의해 위협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보고서의 결론에서, 이노우에는 미국과의 전쟁의 본질,양식,목표에 대한 재고를 주장했다. 그는 이후에 회고하기를 이 보고서는 “해군 지도부에 대한 1톤 폭탄 투하”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함거포주의”에 세뇌당한 그들은 이를 무시했다. 그의 혁신안은 너무 늦게 제안되었다. 일본의 제독들은 미국인을 능가하는 알프레드 마한의 제자들이었고, 전함 이외의 다른 무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특히 태평양전쟁의 전야에 초대형 전함 야마토 건조가 완료되어, 그들의 정신상태는 더욱 전함에 집착하게 되었다.  
 
야마모토와 이노우에 뿐만아니라, 일본 항공대의 일부 간부들도 항공전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겐다 미노루가 대표적이다. 해군참모대학 재학 시절, 겐다는 미국과의 전쟁 계획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있었다. 그는 “결전에서 주력은 항공기가 되고, 전함이 부차적인 것이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가, 정신건강의 의심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1936년 초에 해군 참모대학은 미국과의 전쟁 전략 관련 보고서에서 다음을 주장했다. “적의 주력 함대, 특히 항공모함이 진주만에 정박 중일 경우에, 전쟁 발발 이전에, 일본 해군은 항공모함과 항공기를 동원해서 주력 함대를 기습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해군의 일부 선각자들이 해군 항공전력 우선 전략을 주장했음에도 그들은 주류가 되지 못했다. 해군 군령부와 함대 사령관들은 여전히 마한식의 전함 위주의 함대 결전에 집착했다. 1941년 4월에 야마모토가 해군 군령부에 야마토급 3번 초대형 전함의 건설을 재고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특히 이노우에가 초대형 전함 건설에 대해 반발하자, 해군대신 오이카와와 군령부총장 나가노가 그를 제4함대 사령관으로 좌천시켰다. 이 보직은 태평양의 섬 방어를 관장하는 것이었다. 


Sadao Asada, From Mahan to Pearl Harbor: The Imperial Japanese Navy and the United States, Naval Inst Pr; 1st edition (September 1, 2006) 18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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