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일본 해군의 친-독일화?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20년대 후반부터 일본 해군은 영국,미국 보다 독일에 더 많은 조선 공학자들을 유학보냈다. 방공협정이 체결된 1936년 이후, 베를린 체류 해군 장교들이 워싱턴 혹은 런던 보다 더 많았다. 이후 귀국한 이 장교들이 친독파의 핵심이 되었다. 

1940년 3월, 도쿄의 독일 해군 무관 파울 베네커 Paul Wenneker는 "함장 급 이상의 해군 장교단의 견해는 실제로 100% 친독일적이다... 청년 장교들의 정신도 이 조류에 휩쓸릴 것이다. "라고 본국에 알렸다. 베네커는 많은 일본 중견 장교들과 친분이 있었고, 특히 독일 유학파들과 친했다. 

1940년 7월, 그는 자신의 일기에, "140명의 일본 장교들과 회동, 매우 흥미로운 밤이었다. 많은 수의 청년 장교들이었다. 명심할 것은 일본에서 많은 압력은 밑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이 집단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주일 독일대사 오트는 일본 해군이 영미의 해군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시정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출처-

Sadao Asada, From Mahan to Pearl Harbor: The Imperial Japanese Navy and the United States, Naval Inst Pr; 1st edition (September 1, 2006) 16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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