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세계대전과 일본 해군의 반-영국주의?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전통적으로 일본 해군은 영국 해군 모델을 모방했고, 해상전략은 미국의 알프레드 마한의 가르침을 따랐다. 

하지만 1930년대가 되면서, 반영,반미주의가 성장하고, 친독일파가 부상했다. 이는 해군 장교들의 해외 근무와 관련이 있었다. 

원래, 일본 해군의 촉망받는 장교들은 특히 해사 상위권 졸업생들은, 워싱턴의 무관실로 발령을 받았고, 최고의 조선 공학자들은 영국의 해군대학에서 3년간 수학했다. 

하지만 1930년대가 되면서 독일이 최고 선호국가가 되었다. 

변화는 제1차세계대전 이후 시작되었다. 많은 해군 장교들이 1921년 영국의 영일동맹 폐기를 배반으로 인식했다. 전쟁동안 영국은 일본을 대영제국의 "감시견"으로 이용만하고, 전쟁 이후 걷어차 버렸다.  전쟁동안 일본 해군은 영국의 요청하에, 남태평양에서 독일 잠수함을 몰아냈다. 

영일동맹 폐기 이후에, 영국은 일본 해군에 대한 지원과 특권 인정을 중단했다. 1923년 이후 영국 해군대학은 일본인 조선 공학도의 유학을 거절했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조선 공학도들에게 독일 베를린이 선망의 장소가 되었다. 일본은 독일의 기술과 과학에게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다. 

Sadao Asada, From Mahan to Pearl Harbor: The Imperial Japanese Navy and the United States, Naval Inst Pr; 1st edition (September 1, 2006) 166.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