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국 해군 장교 양성 교육의 문제는?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차대전과 해군 사관학교 교육의 변화?

아사다 사다오에 따르면,

일본 해군 장교 양성 교육에서 다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1909년에 해사를 졸업한 이노우에에 따르면, 당시 장교 교육이 강한 규율 교육이었음에도, "시를 쓰고,몽상을 할 시간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일본 해사는 힘든 훈련, 획일화 그리고 암기 교육을 강화했다. 그 결과 희생된 것은 독창성,개인성 그리고 창의성이었다. 

1915년 졸업생인 다카기 소키치는 당시의 해사 교육이 "스파르타적이며, 구타가 난무했다"고 기억했다. 주입식 암기교육이 강조되면서, 독창성 사고가 억압당했다. 

1917년 졸업생인 도미카는 해사 시절을, 획일적이며, 규격화된 시절로 회고했다. " 강제적 규율 생활 뿐이었고, 어떤 자유로 허락되지 않았다."


Sadao Asada, From Mahan to Pearl Harbor: The Imperial Japanese Navy and the United States, Naval Inst Pr; 1st edition (September 1, 2006) 16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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