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야마모토 이소로쿠가 분노한 이유?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관련 영화들을 보면, 일본 해군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냉정하고,차분하고,합리적인 사람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1930년 런던 해군군축회담의 일본 해군 고문단 장교였던 야마모토는 달랐다. 해군성이 조약을 지지한 것과 달리,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야마모토는 조약 반대파였다. 

30년 4월 1일, 영미와 타협하기로 한 일본 정부의 결의안이 런던에 도착하자, 야마모토는 분노의 눈물을 흘린 청년장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정부의 결정이 전해군에게 큰 충격이며, 사기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 주장했다. 

그날 밤, 해군 장교들이 야마모토의 호텔 방에 모여, 성토 대회를 열었다. 밤새도록 그들은 정부를 성토했고, 그들은 마치 미친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 자리에서 대장성 대표인 가야가 재정 문제로 해군 군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외쳤다. "입닥쳐, 가야, 그렇지 않으면 면상을 갈겨주겠다."라고 그가 말했다. 


출처-

Sadao Asada, From Mahan to Pearl Harbor: The Imperial Japanese Navy and the United States, Naval Inst Pr; 1st edition (September 1, 2006) 150-151.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