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간지,"해군 훈련에는 조약의 제약이 없다!"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일본 해군 함대파 가토 간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군축 조약에 따라 미국에 대한 일본 해군의 함대 열세가 기정사실이 되자, 그는 대안 마련에 나섰다. 가토 간지는 1926년 연합함대 사령관이 되었다. 그는 휘하의 함대에게 끊임없는 훈련을 명했다. 특히 야간 해전 훈련을 강화했고, 훈련을 실제보다 더욱 영웅적으로 하라고 강조했다.

워싱턴 조약 이후 일본으로 귀국한 가토는 70% 비율을 확보하지 못한 점에서 대해서 원로인 도고 제독에게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도고가 그를 위로하며, "조약에는 훈련에 대한 제한은 없지 않은가?"라고 달랬다. (당시 도쿄에는 가토가 70% 때문에 책임을 지고 할복을 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ㅠ)

일본 해군만큼 훈련에 열중한 해군은 없었다. 특히 야간 훈련은 너무 위험했다. 훈련 함정은 초고속으로, 조명 없이 항해했다. 1927년 8월 21일에는 달없는 밤에 2척의 순양함과 2척의 구축함이 충돌하여 120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는 대신에, 가토 사령관은 사고를 워싱턴 조약 탓으로 돌렸다. 그는 부하 함장들에게, "우리는 야간 훈련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워싱턴 조약으로 10:10:6의 함대 비율을 인정한 이상, 그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훈련 뿐이다." "10:6 비율 때문에,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훈련에 매진해야 한다."

가토 간지에게 10:6의 함대 비율은 "가혹한 훈련을 통해서만 우리는 미국을 무찌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만들었다.


출처-

Sadao Asada, From Mahan to Pearl Harbor: The Imperial Japanese Navy and the United States, Naval Inst Pr; 1st edition (September 1, 2006) 119-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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