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가토는 본국의 강경파를 어떻게 설득했을까?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21년의 해군군축회의를 맞아 가토 도모사부로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개막을 맞아 일본 정당정치의 힘이 강하진 반면, 군부의 그것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군비 증강 문제에 대해서도, 전후 경기침체라는 환경 탓으로 문민 정부는 군예산의 축소를 압박했다. 그럼에도 해군 강경파는 미국 해군 대비 전력의 약세를 이유로 함대 건설을 주장했다. 따라서 가토로서는 예산절감과 함대증강이라는 상호 모순되는 요구사이에서 대안을 찾아야 했다. 

가토의 선택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일본제국의 힘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경파의 주장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일본은 무한한 생산력을 가진 미국과의 군비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일본이 70%를 고집해서 회담이 결렬되면, 이후의 미일 군비경쟁에서 일본이 60%의 비율 조차도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론이었다. 

1921년 12월 5일,
워싱턴에서 가토 도모사부로, 본국에 전문, 일본의 양보를 주장하면서 다음을 주장했다. 

가토는 일본이 미국함대 대비 70%를 고집한다면, 회담 붕괴의 책임을 져야하고, 완전한 고립에 직면할 것이라 본국 정부에 경고했다. 

가토의 딜레마는 다음과 같았다. 만약 일본이 60%를 수용하면, 일본이 영미의 압력에 굴복한 것처럼 보일 것이고, 그러면 일본 대중이 분노하여, 미일관계가 엉망이 될 것이다. 반면, 만약 회의가 실패하여 해군 경쟁이 고조되면, 일본은 확실히 질 것이다. 가토는 미국은 현재의 건함 계획을 1924년까지 완료할 것이며, 새로운 계획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 보았다. 하지만 일본은 88함대 건조 계획을 1927년까지 마무리하지도 못할 것이었다. 따라서 일본은 미국과의 해군 군비경쟁에서 점점 뒤처지게 되고, 결국 60% 이하로 추락이 불가피하다. 

가토는 이 전문을 총리, 외무장관, 도고 헤이하치로, 해군 군령부장 그리고 군사참의관들에게 전달하게 했다. 이 전문에서 가토는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즉 60%를 수용하라는 것이었다. 

Sadao Asada, From Mahan to Pearl Harbor: The Imperial Japanese Navy and the United States, 82-83.
   




덧글

  • deokbusin 2019/03/13 16:22 # 삭제 답글

    여기에, 가토 토모사부로가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 연합함대의 참모장이었다는 점도 설득력을 높였죠.

    일본적 조직에서는 조직의 수장보다는 중간간부의 목소리와 권한이 훨씬 큰데, 이를 연합함대에 대입하면 참모장이 실질적인 함대 지휘관에 가깝게 됩니다. 그러니, 쓰시마 해전에서의 영광을 토고가 차지하게 되었지만, 실질적 영향력은 가토의 차지였지요. 웰링턴과 달리, 저만한 전투의 영웅이라면서 정작 토고가 이름값만 높지 실질적 힘은 약한 자리로만 돈 반면에, 가토는 대신과 총리까지 거머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죠.^^

    일본해군에게 있어서 불운한 것은 군사와 정치 모두 실력도 있고, 저 해전에서의 실질적 지휘자라고 해군 내부에서 인정받은 가토 토모사부로가 토고보다 10여 년 먼저 세상을 뜬 것이죠. 그리고 남은 것은 이름값은 높았지만, 장래의 해군 방향을 이끌 실력은 전혀 없던 토고였고, 이 실력은 없고 보수적이던 토고가 어쩌다가 참견할 때마다 일본해군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갈림길에서 보수적 선택만 하면서 서서히 동맥경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토고가 죽을 때 즈음에 가토도 죽었다면, 그동안 일어날 토고의 삽질들을 가토가 제어하겠지만 말입니다.
  • 파리13구 2019/03/13 16:39 #

    가토 도모사부로는 워싱턴 회담 때부터 이미 암환자였다고 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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