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가토 도모사부로, 역사란 무엇인가? Le m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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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일본 해군의 역사는 2명의 가토의 경쟁과 갈등으로 정리가 가능하다.

일본의 국운이 달린 워싱턴 해군 군축회의에 일본 해군의 가토 도모사부로와 가토 간지가 나란히 참석했다. 

1921년의 일본에서 해군대신 가토 도모사부로와 해군 중장 가토 간지는 각각 2개의 해군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었다. 전자가 조약파, 후자는 함대파였다. 해군대신이 일본의 국력의 한계를 인정, 국운을 위해서 영미와의 협조가 불가피함을 인정한 현실주의자였다면, 가토 간지는 강한 함대를 만들어 미국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꿈을 가진 이상주의자였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가 독서 취향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가토 도모사부로는 가시마 마루호를 타고가는 미국 행 배에서 러시아의 세르게이 위테의 회고록 영문 번역본을 읽었다. 특히 그가 주목한 것은 위테가 1905년의 러일전쟁 종결을 위한 포츠머스 평화회담에서 언론에의 호소를 통해 미국 여론이 러시아를 동정하도록 어떻게 노력했는지에 대해서였다. 

반면, 가토 간지는 일본 대표단 본진에 앞서, 코레아 마루 호를 타고 미국에 갔다. 그 때 그가 읽은 책은 전쟁 공포에 관한, 월터 피트킨의 <우리는 일본과 싸워야만 하는가>였다. 

워싱턴 군축회의에서 시데하라 기주로와 더불어, 가토 도모사부로는 영미와의 태평양 데탕트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1920년대의 태평양 국제질서의 "상대적 안정"은 그의 공로라 할 수 있다. 반면, 가토 간지는 조약에 반대하는 일본 해군 세력의 떠오르는 별이 되었다. 조약 파기는 그의 일생의 목표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 조약을 파기한 일본을 기다리는 운명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였다. 

참고-

Sadao Asada, From Mahan to Pearl Harbor: The Imperial Japanese Navy and the United States, Naval Inst Pr; 1st edition (September 1, 2006)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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