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미일 군비 경쟁과 안보 딜레마?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워싱턴 회의의 배경은 1920-1921년의 일본과 미국과의 사이에서 고조된 전쟁 공포였다. 당시 미국 해군은 일본과의 전쟁 가능성에 긴장했다. 

양국 해군 사이에는 일종의 "안보 딜레마"가 존재했다.  안보 딜레마란 갈등하는 두 국가가 군비경쟁에 나설수록, 안전감보다는 불안이 증폭되는 것을 말한다. 

일본은 필리핀과 중국의 문호개방을 보호하기에 충분히 강한 미국 해군을 자신의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반대로, 미국은 일본 본토 방어를 위해 충분히 강한 일본 해군을 필리핀과 극동의 미국의 권익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출처-

Sadao Asada, From Mahan to Pearl Harbor: The Imperial Japanese Navy and the United States, Naval Inst Pr; 1st edition (September 1, 2006) 58.

안보 딜레마에 대한 적절한 해법은 상호 군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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