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도고 시게노리 아내의 근거없는 자신감?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45년에 일본이 미국에게 받은 폭격을 고려하면, 일본은 미리 방공호 시설을 마련했어야 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았다. 이유는? 도쿄가 공습받을 일이 없을 것이란 자신감 때문이었다.

천황의 황군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초반에 연전연승하고, 무적의 군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도쿄 사람들은 미국이 일본 본토를 위협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의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도고는 한국계 일본인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조선인의 피가 흐르는 것을 무척 고민하였고 일본인의 차별 대우와 사귀던 여성들과 결혼하려 할 때 일본인 부모의 심한 반대에 부딛쳐 좌절됐다. 결국 일본인과 결혼하기 힘들어 30이 넘어서 독일대사 재직시 대사관의 독일 여자 직원이던 과부 에디타 데 랄란테와 결혼, 딸 하나를 얻었다. 그리고 딸이 성장하자 사위를 서양자(壻養子)로 삼아 도고 후미히코(東鄕文彦)라 하고 자신의 호적에 입적시킨다.

1942년 4월 17일, 도고의 아내, 에디타는 중립국 외교관 부인들과의 저녁 모임에서, 그녀는 자신의 귀중품, 가죽제품,보석,와인을 도쿄 밖으로 옮길 필요가 없으며, 방공호 시설에 갈 이유가 없다고 자신했다. 왜냐하면 양키들이 도쿄를 절대로 공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 날, 미국의 제임스 둘리틀 중령이 이끄는 16대의 B-25 편대가 도쿄를 공습했다. 

폭격은 충격을 주었지만, 피해가 미미했고, 부상자가 적어서 사람들은 안심하게 되었다. 

당시 도쿄사람들은 이것이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욥기 8장 7절 말씀대로, 네 시작은 미약(微弱)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昌大)하리라.


참고-

Richard B. Frank ,Downfall: The End of the Imperial Japanese Empire,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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