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마한, 러일전쟁에서의 러시아 해군...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러일전쟁에 대해서 알프레드 마한은,

러시아 해군의 치명적 오류는 함대를 분산시킨 것이라 했다.

러시아 전함의 힘은 태평양 함대(여순 항,블라디보스톡 항), 흑해 함대, 발틱 함대로 분산되어, 일본 해군에 맞서 힘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 마한의 교리대로, 함대를 결집하여 싸워 승리한 것은 도고 헤이하치로의 일본 해군이었다. 


Sadao Asada, From Mahan to Pearl Harbor: The Imperial Japanese Navy and the United States, Naval Inst Pr; 1st edition (September 1, 2006) 17-18.

러시아 해군의 오류는 미국 해군을 위한 암시가 되었다.

미국 해군력은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분산되어 있었다. ㅠㅠ

마한에 따르면, 당대와 장래의 잠정적 위협은 태평양에 있고, 따라서 태평양 우선주의 원칙에 따라, 미국 함대의 힘은 태평양에 집중되어야 했다. 이는 버락 오바마적인 아시아 재균형전략과 상통한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미국 함대는 태평양에 결집되어야 한다.



덧글

  • 파파라치 2019/03/10 16:29 # 답글

    러시아에게 심장부인 발틱해를 비워두고 극동에 해군을 결집시킨다는 옵션이 가능한 것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전쟁 종반에는 결국 그렇게 되었지만 적어도 항구적으로는 불가능했지요.

    육군이건 해군이건 핵심부인 유럽 러시아를 벗어나서 전력을 집결시킬 수 없다는 것은 러시아의 오랜 딜레마였지요.
  • 파리13구 2019/03/10 16:58 #

    그 오랜 딜레마의 해법은 없었나요?
  • 파파라치 2019/03/10 20:57 #

    그게 가능했다면 러시아가 만년 콩라인을 탔을 이유가...

    이론적으로는 (2차대전 당시의) 미국처럼 양면전을 수행할 만큼 미친 물량+생산력을 보유하고, 역시 미국처럼 광대한 국토가 촘촘한 물류망(철도+수로)으로 연결되고 거기에 양대양을 잇는 연결로(i.e., 파나마운하)를 갖는다면 가능하겠지만 불행하게도 러시아는 미국이 아니죠.

    당장 러일전쟁 반세기 전의 크림전쟁시만 해도 러시아는 병력과 물자를 자국내에 있는 전선까지 옮기기조차 힘겨워했을 뿐 아니라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에 상당한 육군과 함대를 남겨놓아야 했는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미영전쟁 당시 워싱턴 털리듯이 털렸을테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봐야죠.
  • 파리13구 2019/03/10 22:29 #

    그러면 당시 많은 나라들이 러시아를 두려워한 이유는 뭐죠?

    시베리아 철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러일전쟁에서 누가 이긴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었나요?
  • 멋부리는 설인 2019/03/10 23:09 #

    규모도 컸고 나폴레옹을 잡아낸 전적도 있는 러시아 군사력도 러시아를 두려워하는데 일조를 했고 그 당시 제정 러시아의 산업화가 눈부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향후 러시아제국의 근대화가 이뤄져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하나의 거대한 경제적 공간이 탄생할거라 예측한것도 컸죠..

    시베리아철도는 서부 러시아에 있는 거대한 러시아 육군 병력을 순식간에 러일전쟁의 전선으로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가 매우 컸죠 동부에 있는 러시아 병력은 서부에 비하면 별게 아니었죠.

    당시 많은 사람들은 러시아의 승리를 점쳤습니다 군사력의 크기나 국력으로 보나 러시아가 더 큰 우위에 있었습니다 일본이 지리적인 우위를 이용해 초반에 승리를 거두었으나 러시아가 마음먹고 장기전으로 흘러갔으면 러시아가 더 유리한 위치에 섰을 것 같네요 문제는 혁명이 터져버린 것이죠.
  • 파파라치 2019/03/10 23:13 #

    러시아처럼 넓은 국토와 많은 인구, 그리고 군사적 저력을 가진 나라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러시아가 유럽의 핵심부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은 돌려 말하면 핵심부에서 싸우면 그만큼 벅찬 상대라는 말도 됩니다. 나폴레옹 전쟁이나 독소 전쟁은 바로 그런 케이스였죠. 반대로 영미와 같은 해상세력처럼 원거리에 힘을 투사함에 있어서는 제약이 불가피했고요. 마한의 말이 러시아가 극동에 상식적으로 해군력을 집중시켰어야 했다는 의미라면 그건 불가능한 요구사항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것 같습니다.

    당연히 러시아도 자신의 딜레마를 극복하려고 노력했고 시베리아 횡단철도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지만, 극동은 러시아의 자원과 인구가 집중된 우랄산맥 이서로부터 너무나 멀었고 심지어 러일전쟁 당시 그 철도는 복선화도 안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일본은 기본적인 체력 차이가 있었고 따라서 일본의 승리는 힘겨운 것이었지만, 러일전쟁 전까지 일본은 아직 열강의 일원으로 취급받지도 못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일본에 패배함으로써 러시아의 국제적 입지가 얼마나 후퇴했는지도요.
  • 파파라치 2019/03/10 23:22 #

    참고로 1차 대전 전야인 1914년 기준 러시아와 미국의 철도 총연장은 4.6만 마일 대 25만 마일이라고 합니다(출처:강대국의 흥망). 러시아의 국토 면적이 미국의 두 배가 넘고 미국은 항행가능한 강들이 풍부한 나라임을 고려하면 이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 파리13구 2019/03/11 01:50 #

    파파라치 님/

    그렇다면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패배는 필연적이었다는 겁니까?

    일본이 패할 수는 없었나요?
  • 파파라치 2019/03/11 11:09 #

    왠지 점점 원래의 얘기해서 벗어나는 것 같은데...

    전쟁이란 처음부터 일방의 전력이 압도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없이 많은 변수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승패를 예측한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당연히 러일전쟁 당시에도 전쟁의 향방에 영향을 끼친 많은 변수가 있었고, 이중 상당수는 전혀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뤼순 공방전에서의 마카로프 제독의 전사, 대한해협을 우회하지 않고 돌파하기로 결정한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의 결정, 그리고 무엇보다 러시아로 하여금 전쟁 수행을 포기하게끔 만든 내부의 소요 사태는 일본과 무관하지도 않았지만(일본의 첩보망은 이미 소요사태를 감지하고 반정부 세력에 자금을 대고 있었음) 전쟁 개시 시점에서 예상할 수 있었던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1905년의 시점에서 일본이 무리한 강화 조건을 끝까지 고집하고 러시아가 이에 결사 항전을 감행했다면 이후의 일은 사실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제가 말하고자 한 것은 러시아의 패배가 처음부터 확정적이었다는 말이 아니라, 러시아가 일본에 비해 우월한 국력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지정학적 한계에 의해 불리한 조건을 안고 전쟁을 수행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것이 패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마한이 주장한 것과 같은 해군력의 집중은 러시아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었다는 거죠.
  • deokbusin 2019/03/12 22:45 # 삭제 답글

    제정 러시아도 지리적 약점을 인지하고 있긴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러일전쟁 개전직전 러시아 태평양함대 전함전력이 현지 일본해군 전함 총 척수와 동수가 될 리 없지요. 심지어 극동주둔 러시아 사단의 수가 일본육군 사단 수와 동등 이상이었으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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