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일본의 정신분열, 해양세력인가,육상세력인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메이지 일본의 햄릿의 고민은 "해상진출인가, 대륙침략인가, 그것이 문제로다."였다. 

일본 같은 자원이 빈약한 국가의 경우, 섬나라임을 고려할때, 근대일본은 자신의 발전 방향이 해양 세력인지, 아니면 육상 세력인지 조기에 결정했어야 했다. 

일본이 해양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사카모토 료마였다. 1867년에, 유신의 주역인 사카모토 료마가 강한 해군력을 주장한 국가전략 기초를 위한 8개조의 계획을 제안했다. 이에 따르면, 일본에게 바다는 무역과 경제 안보를 위한 원천이며, 침공에 맞선 방벽이었다. 만약 일본이 료마의 길을 따랐다면, 육군 전력은 최소화하고, 해군 발전에 전력을 쏟아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일본은 영국과 유사한 군사제도를 유지했을 것이다. "해군 주도,육군 보조"

이에 반해서 일본이 육상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주장했다. 사카모토의 해양 사상과 대비되는 것은 메이지의 과두들 중 하나인 총리 출신의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전략사상이었다. 그는 1890년 제국의회 연설에서, 대륙을 중심에 둔 전략사상을 주장했다. 그는 일본의 외교 군사 문제에 관한 의견서에서 국가의 독립자위의 길은 주권선과 이익선을 정해 이것을 지키는 데에 있다고 했다. 1890년 당시, 이익선에 대한 일본의 주장이 가지는 함의는 한반도를 러시아와 청 제국의 세력권 밖에 두도록 유지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리고 1937년, 한국과 만주가 주권선의 일부가 되었고, 중국 대륙은 이익선이 되었다. 이후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는 범아시아주의가 대두하면서, 야마가타 사상의 일부 수정이 있었다. 1945년이 되면, 중국이 주권선의 일부가 되었다. 

료마의 해양사상과 야마가타의 대륙사상은 이후 일본의 해군과 육군 사상에 각각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해양사상으로 무장한 해군과 대륙침략 사상으로 무장한 육군은 국책의 수립 과정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일본의 해군과 육군은 예산 배분을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했다.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 였다. 더 많은 예산 확보를 위한 외세의 위협을 과장하기 위한 경쟁에 나선 해군은 미국이 주적이었지만, 육군의 주적은 항상 러시아였다. 자원이 부족한 일본의 입장에서, 잠정적으로, 육상강국 러시아와 해상강국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준비한다는 것은 국력의 소모를 유발할 수 밖에 없었다. [냉전 시대의 미국과 소련을 생각해보면, 일본은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준비한 것이었다.ㅠㅠ]

통수권독립이란 논리 때문에, 민간 정부가 육군과 해군의 경쟁,갈등을 조정할 수도 없었다. 정부는 우선권을 정할 수 없었고, 양군의 주장을 봉합하는 선에서 국책을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 국력의 잠재력의 관점에서, 일본이 해상강대국 미국을 상대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육상 강대국 러시아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불합리했지만, 일본 정부는 양군의 주장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소련과의 전면전은 45년까지 없었던 것은 불행 중 다행이지만, 일본 육군은 미국과의 전쟁 계획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않았다. 1939년이 되서야 일본 육군은 미국에 대한 보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을 뿐이며, 심지어 그 계획 조차도 필리핀과 괌을 공격한다는 구상에 그쳤고, 미국과의 육상전쟁에 대한 총체적 계획 수립에는 이르지 못했다. 

일본 육군은 러시아를 상대로 오랫동안 전쟁을 준비하다가, 준비가 덜 된 상태로, 미국을 상대하게 된 것이다.


참고-

Patalano, A. (2015). Feigning grand strategy -Japan, 1937–1945. In J. Ferris & E. Mawdsley (Eds.),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 pp. 159-188).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Fujiwara Akira, "The Role of the Japanese Army," in Dorothy Borg and Shumpei Okamoto (eds.), Pearl Harbor as History: Japanese-American Relations, 1931-1941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73)  



덧글

  • 미망인제조기 2019/03/07 13:22 # 답글

    준비가 덜 된 미국.!
  • 파리13구 2019/03/07 13:24 #

    준비가 덜 된 채로, 미국을 상대했다가 맞습니다. ^^
  • 미망인제조기 2019/03/07 13:27 #

    본문이 일본이 준비가덜 된 채로 라는 뜻인가요?
  • 파리13구 2019/03/07 13:28 #

    지금이 원문이 없는데, 그런 의미가 맞습니다.
  • 미망인제조기 2019/03/07 13:31 #

    사실 미국이 2차대전 참전에 준비가 덜 되었다고 해도 아주 틀린 지적이 아닌거 같은데요
  • 파리13구 2019/03/07 13:32 #

    그것도 맞지만, 이 문장의 의도는 그것이 아닙니다.
  • 미망인제조기 2019/03/07 13:35 # 답글

    답변 감사 합니다. 연속되는 포스팅 기대해 보겠습니다
  • 파리13구 2019/03/07 13:35 #

    감사합니다. ^^

    덕분에 글을 수정했습니다.
  • 2019/03/09 21:01 # 삭제 답글

    근데 애초에 이차대전을 제대로 준비한 나라가 있었나요?
    일본이야 없는 살림에 육해군이 내전 수준의 대립을 했었으니..
  • 파리13구 2019/03/09 21:02 #

    육군 내부의 대립은 더 심각했어요..ㅠㅠ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