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세계대전과 통제파의 대두...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차 세계대전은 일본 육군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장기전,소모전,총력전은 낯선 충격이었고, 일부 육군 인사들은 이에 대비하기 위한 군의 체질 개선을 주장했다. 

‘근대화노선파’는 1924년부터 1927년까지 육군대신이었던 우가키 가즈시케(宇垣一成)를 중심으로 한 육군성의 군사제도 담당자들과 나가타 테츠잔(氷田鉄山)을 중심으로 한 러 ․ 일전쟁 후 형성된 실전경험이 없는 육군대학교 출신의 신흥 엘리트들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파벌로, 1920년대 군의 개혁을 주창해왔다.

이들은 장기전 ․ 소모전의 가능성을 인정하였다. 우가키는 1925년 “단시일내에 전국(戰局)의 종결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개전 초기에 투입이 가능한 정예부대를 평시부터 준비해야 하며, 전쟁이 확대되어 지구전이 될 경우에는 국가총무장에 합당한 준비를 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장기전 ․ 소모전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병력동원이나 물자 등을 준비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수여도 근대화된 정예 상비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정예 상비군이 결전을 통해 전쟁을 신속하게 종결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여 장기전에 대한 준비 또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근대화노선파’는 동원체제 정비와 무기의 현대화 등을 통해 장기전에 대한 준비를 역설한다. 

심호섭, "왜 일본 육군은 단기결전, 백병돌격으로 나아갔는가?", 군사/-(86), 2013.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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