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일본 육군, 정신력만으로 싸울 수 없다!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제1차세계대전은 일본 육군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러일전쟁 식으로 미래의 전쟁을 싸우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1919년 12월,
육군 임시군사조사위원회 보고서

제1차 세계대전의

두 번째 충격은 ‘황군(皇軍)’의 ‘정신적 우위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을 조사, 연구하던 육군의 임시군사조사위원회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종래에는 물질적 문명의 발달과 전쟁력의 요소인 정신력이 서로 배치되어 양립할 수 없으며, 전쟁에서 물질력 이용 증가는 정신력에 대한 요구를 경감시킬 수 있다고 사람들이 곧잘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의 경과는 그것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어서 사람들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 이번 전쟁에서 나타난 여러 사실은 제국이 홀로 야마토혼(大和魂)에 심취한 채 안심하고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1919년 12월, 41〜44쪽).”

 즉, 물질적인 열세를 정신력의 우세로 보강한다는 러일전쟁 당시의 사고방식이 유럽에서 나타나는 물량 전쟁 앞에서도 과연 통용 될 것인가 하는 우려가 일본 육군 군인들 사이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물질 면에서 서구 육군의 압도적 우위가 일본 육군이 유일 하게 의지하는 ‘제국민 帝國民 정신력’의 우위를 위협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1차대전 이후 육군 일부에서 이 점을 심각하게 수용하여, 초조함을 드러냈다. 

야마다 아키라, 일본 군비확장의 역사, 어문학사, 2014. 6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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