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영국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은 영국의 육군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인가? 같은 섬나라 영국에서 해군의 명성에 비해서, 영국 육군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초라했다. 대영제국은 영국 해군의 나라였다.
그렇다면, 영국에 비해 가진 것도 변변치 않았던 일본은 육군에 대해 과잉투자를 한 것으로 보인다. 왜 영국은 해군 위주의 나라가 되었고, 일본은 육군 중심의 나라가 된 것인가?
일본의 군사전략에 대해서 클레이튼 제임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1880년 이래 일본 군사전략의 진화에서 육군과 해군은 대륙 침략에 부응한 계획을 발전시켜 왔다. 1920년대를 제외하고 말이다.
일본은 영국과 섬나라라는 점에서 지리적으로 유사하고, 비슷하게 근처에 전통적으로 적대적인 대륙 세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메이지 유신 이래의 일본 지도자들은 자신의 조국이 해양 세력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대륙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전망했다.
[물론 유신지사,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이 해양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67년에, 유신의 주역인 사카모토 료마가 강한 해군력을 주장한 국가전략 기초를 위한 8개조의 계획을 제안했다. 이에 따르면, 일본에게 바다는 무역과 경제 안보를 위한 원천이며, 침공에 맞선 방벽이었다. 사카모토의 해양 사상과 대비되는 것은 메이지의 과두들 중 하나인 총리 출신의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전략사상이었다.]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일본은 육군이 대륙 패권을 위한 주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하면 해군은 보조였다. 해군은 수송,보급,지원 그리고 육군을 보호하고, 주요 작전 기지와 본토 방위의 역할을 담당했다. 쓰시마 해전 같은 러일전쟁에서의 눈부신 승리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해군 전략가들은 적어도 1941년까지, 육군의 자상 작전을 보조한다는 관점에서 해군 전략을 만들었다. 일본 주변 해역 외부의 대양에서의 대규모 해상전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진했다. 함대의 주요 임무가 육군을 지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해군은 해전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전간기 동안 일본 해군 전략가들은 무기 보다는 화력의 신속,기동에 더욱 관심을 두었다. 이 기간 동안 일본 해군은 잠수함과 해상 항공력 연구의 선두가 되었다. 그렇지만, 잠수함과 항공모함은 여전히 육군 작전을 위한 보조 세력으로 간주되었다.
참고-
D. CLAYTON JAMES, American and Japanese Strategies in the Pacific War, in Makers of Modern Strategy from Machiavelli to the Nuclear Age ,1986.
야마모토 이소로쿠 이전의 일본 해군이 그랬다는 것이다.
전간기 동안 왜 영국은 해군주도 육군보조의 나라가 된 반면, 일본은 육군주도, 해군 보조의 나라가 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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