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30년대 일본 급진우파 운동에서 국가 사회주의(나치는 아니라 해도)를 주장한 자가 기타 잇키였다. 기타 잇키는 젊은 시절에 맑스주의 사회주의자였고, 이는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경로와 유사했다. 기타와 그를 추종하는 민족주의 혁명가들은 자본주의에 반대했다. 그들은 주요 산업의 국유화와 이익 공유 그리고 개인 소유 산업에 대한 국가 규제를 주장했다. 이러한 유기체적이고, 권위주의적 새 정부는 급진적인 토지 개혁을 실시, 보다 공동체주의적이며, 부분적으로는 집산주의적 농업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그 궁극적 목표는 새로운 동아시아 해외 제국의 건설이었다.
기타 잇키의 주요 지지자들은 육군 황도파 Imperial Way faction 였다. 황도파는 자신들보다 보수적인 참모본부의 통제파를 '파시스트'로 규정했다. 황도파에게 통제파는 파시스트였다. 왜냐하면 통제파는 혁명적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 제도하의 정부 권력의 확대만을 주장하기 때문이었다.
황도파 혁명가들에게 현상유지적 권위주의는 산업화에만 도움이 될 뿐이며, 그것은 단순한 '파시즘'일 뿐만 아니라 민족사회에 대해 파괴적인 힘을 행사할 뿐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일본 민족주의 내부에 반동적인 일본주의 우파 세력이 존재했다. 그들은 모든 외래 제도를 거부하고, 순수하고 토착적이고, 주로 농업 기반의 사회를 부활하려 했다.
출처-
Stanley G. Payne, Fascism Outside Europe? Japan , FASCISM -Comparison and Definition, 163
- 기타 잇키와 황도파는 통제파의 파시즘에 반대했는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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