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사이온지가 히로히토에게 화낸 이유는?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히로히토와 사이온지 긴모치...

전쟁전 일본 정치의 불문율은 천황이 국정에 직접 간여하지 않는 것이었다. 신하들이 이미 정한 정책이라면, 천황은 이를 재가하는 식이었다.

천황이 군부에 대해 도전한 거의 유일한 사례는 1928년에, 그가 만주 군벌 장작림 Chang Tso-lin 장쭤린 張作霖  의 암살 소식을 접했을 때 였다. 

히로히토의 분노는 폭발했고, 그는 군주가 되기 위해 배운 것을 잠시 잊고, 총리를 강하게 비난했다. 이 때문에, 다나카 총리는 사임했다. 

사이온지 긴모치는 천황의 배후에서, 히로히토가 군부를 불신하게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다나카 사임 건에 대해서 분노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 대상은 천황이었다. 

그는 천황의 신하가 아니라, 그의 스승의 입장에서 말했다. 사이온지는 천황이 폭군 처럼 행동했다고 비판했다. 

원로의 질책이 천황에게 충격을 주었고, 그는 이후에 일본 근대의 마지막 겐로, 사이온지 긴모치의 교훈을 어기지 않으려 노력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John Toland. The Rising Sun: The Decline and Fall of the Japanese Empire, 1936-1945, Modern Library; Reprint edition (May 2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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