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히틀러의 집권과 일본 우파의 흥망?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일본 파시즘이 독일의 히틀러 현상과 관련이 있다면, 양자의 부상은 연계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떠했을까?

일본의 국가 사회주의파는 일본 우파의 주류가 된 적이 없었고, 주변부 세력에 불과했다. 1933-1935년 동안 국가 사회주의 성향의 정기간행물은 전혀 증가하지 않았고, 실제 활동은 오히려 축소되었다. 

당시 일본의 우익 출간물에서 유럽 파시즘에 대한 일반적 평가는 어떠했을까? 1930년대 초에, 일본 경찰은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매우 느슨하게 사용했고, 우익 진영의 일반적 부상, 국가 사회주의 정간물, 심지어 히라누마의 국본사 The National Foundation Society (国本社, Kokuhonsha)를 지칭하는데 사용했다. 하지만 1935년이 되면, 공식 검열당국은 파시즘을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정책을 지칭할 때만 사용했다. 

1935년에 일본 우파가 출간한 책 712권 중에서, 단지 11권만이 파시즘 연구에 대한 것이었다. 217권은 우파 독트린에 관한 것, 89권은 천황기관설, 70권은 역사 인물에 관한 것이었다. 검열당국은 파시즘 관련 저작의 희귀함에 주목했고, 파시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지배적임을 인정했다. 일본의 우익 사상가들은 일본의 독특한 사상, 무사도 전통에 따라 외국 모델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을 꺼렸다. 이는 전쟁전 일본의 반-외세주의 경향을 반영했다. 

따라서 일본의 우익 행동주의의 발전은 유럽의 파시즘 발전과 궤를 달리했고, 유럽식 파시즘 모델을 모방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출처-

Kasza, Gregory J. "Fascism from Below? A Comparative Perspective on the Japanese Right, 1931-1936." Journal of Contemporary History 19, no. 4 (1984)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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