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전쟁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인가? 어떻게 과거의 전쟁이 미래의 전쟁으로 발전하는가? 제1차세계대전은 일본의 진주만 기습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보통 1차세계대전을 공부한다고 하면, 전쟁사를 공부한다고 생각한다. 사라예보에서 시작해서, 베르사유에서 끝난다. 시각은 보통 유럽으로 한정되며, 일본의 참여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일본의 시각에서 공부한다고 해도, 일본이 중국의 독일 조차지를 공격하고, 태평양의 독일 식민지를 접수하고, 유럽전선에 지원군을 보낸 사실을 부각시킬 뿐이다.
하지만, 일본에게 1차세계대전의 역사는 역설적으로, 전쟁이 끝나자마자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간기 일본에서, 육군 황도파와 통제파 갈등의 배경에는 1차세계대전의 의미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에 대한 해석 갈등이 있었다. 양자에게 공히 1차대전은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그 교훈은 달랐고, 이것이 양대 파벌의 정책 차이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1차대전은 일본에게 36년의 2월 26일 사건, 진주만 기습에 직,간접의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일본사에서 결정적인 사건은 1차대전 - 2-26사건- 진주만 기습이었다고 볼 수 있다.
원래 절친이며, 육사동기였던 황도파의 오바타 도시로와 통제파의 나가타 데쓰잔이 결국 원수사이가 된 배경에는 1차대전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와 그 교훈으로서의 일본 육군의 미래 정책에 대한 갈등 (단기적인 섬멸전 대 총력전)이 결정적이었다.
20세기 역사에서 1차대전을 이해한다는 것은 유럽에서의 시작과 끝을 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관련된 내용으로 아직까지 국내에서 만족할만한 수준의 연구가 나오지 않은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1차대전을 알면 일본을 모르고, 반대로 일본을 알면, 1차대전을 모르는 난감한 상황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는 두 개의 사건을 연결시켜 이해해야 할 때이다.
1차대전은 2-26을 경유하여, 진주만 기습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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