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사건과 태평양전쟁의 기원?"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가타야마 모리히데, <미완의 파시즘>을 읽다가,

황도파의 중심인물 오바타 도시로의 전쟁사상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기타야마에 따르면, 아라키 사다오와 오바타의 황도파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갖지 못한 나라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당분간 일본이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가진 나라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전제에 따른 결론은 일본은 영국,미국 같은 일류국 군대를 상대로 싸울 수 없다는 것으로,  일본은 장비도 좋고 보급력도 충분한 적과 절대로 전쟁을 벌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1936년의 2월 26일 사건이 중요하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일본 육군 내의 황도파 세력이 휴거?를 당했다. 그 결과 통제파 세력이 득세하게 되었고, 대륙 침략을 통해서 빠른 시간안에 일본을 가지지 못한 나라에서 "가진 나라" 변신, 일본이 총력전 준비를 마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통제파가 득세했다는 것이다. 

통제파가 주도하는 일본의 대륙 침략이 영국과 미국의 견제를 야기했고, 그것이 결국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오바타 도시로에게, 미국에 선전포고하는 일은 "광기의 사태"였다고 한다. 

적어도 황도파가 건재했다면. 일본이 강대국 영국,미국에 대해 전쟁을 도발하는 것을 견제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참고- 

가타야마 모리히데, 미완의 파시즘-근대 일본의 군국주의 전쟁철학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가람기획,2013. 168.

덧글

  • 나인테일 2019/02/21 02:35 # 답글

    자국과 적국의 역량 차이는 잴 수 있었던 사람들이 되도 않는 쿠데타는 각도 안 재고 다이브를 했다는게 참 아이러니하네요.
  • 파리13구 2019/02/21 03: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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