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쓰노 가즈스케, 1차세계대전의 교훈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차세계대전에 대해서 일본 육군의 일부 선각자들은 그 교훈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러일전쟁식 전쟁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었다. 보병의 돌격정신만 가지고 전장을 주도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이 전쟁사상이 20년대 육군의 우가키 군축이란 정책으로 실현될 것이었다.

1918년 여름, 육군 소장 쓰노 가즈스케가 <유럽전에 관한 소감의 일절>을 발표했다.

쓰노는 보병이므로 보병 중심의 시각을 갖고 있다. 그는 유럽 전쟁에서의 병기의 진보,군사 공업의 진전은 전쟁 이전과는 격세지감이 있다고 한다. 포병,공병은 물론이고 보병이 갖춘 원거리 공격 무기도 완전히 달라졌다. 기관총,경포(經砲),박격포,수류탄,유탄총……. 그들의 위력을 정면으로 인정하고 이전의 상식을 버리고 다시금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시대의 변화를 돌아보지 않고,대전의 교훈을 귀감으로 삼지 않고 여전히 보병의 전투 정신에만 의존한다면 앞으로는 전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보병의 돌격 정신에만 의존하고 화력을 가볍게 여긴다면 결과는 비참해질 것이다. 러일전쟁 때 뤼순에서 맛본 비참한 경험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시대의 흐름은 뤼순에서 앞으로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제 멈춰 세울 수 없다. 지금 뿌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뤼순 보다 훨씬 더 심한 비참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승패는 정신력 우위보다 물질적 위력으로 결정된다. 그런 새 시대의 상식을 순수히 받아들여 군의 사상과 편제를 개혁해야 한다. 1) 

쓰노는 이러한 전쟁 사상을 바탕으로, 1924년 6월에 우가키 가즈시케 육군대신과 더불어, 육군차관으로 "우가키 군축"을 주도했다. 쓰노의 주장이란 이런 것이었다 : 보병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으므로, 근대국가 군대에서 보병을 줄인다. 그만큼 남는 예산에서 근대화를 추진하다. 사람의 군대에서 기계의 군대로 바꾸자.2) 

우가키-쓰노 정책에 대해 반대한 것이 이후 황도파가 되는 아라키 사다오 荒木貞夫(1877~1966), 마사키 진자부로(1876~1956)였다. 반대를 주도한 것은 그들의 정신적 스승 우에하라 유사쿠였다. 장비보다 정신력을 중시하는 우에하라와 그 추종자들은 우가키 군축에 강력히 반대했다. 3) 
 

1) 가타야마 모리히데, 미완의 파시즘-근대 일본의 군국주의 전쟁철학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가람기획,2013. 88.

2) 가타야마 모리히데, 미완의 파시즘-근대 일본의 군국주의 전쟁철학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가람기획,2013. 88.

3) 이정용, "1930년대 일본 육군의 파벌 항쟁", 한일군사문화연구/6(-), 2008 ,263.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 육군은 마치 1차대전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처럼 싸웠다.

과학도, 물량도, 보급도,화력도 경시했다. ㅠㅠ



덧글

  • KittyHawk 2019/02/21 01:05 # 답글

    가장 큰 원인 중 1개를 꼽자면 그러한 기술군을 추구한 이들의 리더격이라 할 만한 나가타가 황도파에 경도된 아이자와에게 참살당한 게 컸다고 봅니다. 실무와 현실은 알지만 어딘가가 부족하거나 위험한 도조, 이시와라 등을 제어하고 방향을 잡을만한 위치에 있던 나가타의 죽음이 일본 제국 육군에겐 '역사의 만약?'에 해당하는 사건이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 파리13구 2019/02/21 03:03 #

    동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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