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나가타 데쓰잔- 일본 육군 통제파의 대부, 그는 미래지향적 파시즘을 주장하는 혁신 우파였다.>
태평양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전쟁 영화에서,
칼을 빼어들고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돌격하는 일본군을 보면서, 한숨을 들이쉰다.
야, 저게 파시스트 일본 군대의 참모습인가? ㅠㅠ 기관총을 총검술로 이길 수 있다는 정신승리의 철학적 배경은 무엇일까?
이른바 "반자이 돌격"은 황도파 아라키 사다오의 전쟁철학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아라키는 무기의 양과 질 보다는 정신의 힘을 중시했다. 일본군은 전쟁터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정신력으로 서양 세력의 물리력을 압도할 수 있다고 아라키는 믿었다.
하지만, 아라키와는 다른 결의 주장을 앞세운 파시스트들이 전쟁전 일본에 존재했다. 그들은 황도파와 사실상의 내전 관계에 있었던 통제파였다. 황도파가 전통적이고, 복고적이고, 일본적이었다면, 통제파는 현대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서양적이며, 파시즘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파시즘 백과사전에 따르면, 일본 파시즘의 특징, 즉 그것이 유럽의 파시즘과의 차이란 대중과의 관계이다. 유럽 파시즘이 대중운동이었다면, 일본의 그것은 엘리트의 전유물이었다. 일본의 엘리트 중심 파시즘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나가타 데쓰잔이 주도한 통제파였다.
그들을 일반적으로 혁신 kakushin 革新, かくしん, "혁신 우파" renovationist Right 라 부른다. 황도파가 복고적이었다면, 통제파는 혁신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통제파와 더불어, 총력전 준비에 매진한 내각 기획국 the Cabinet Planning Board 의 직원들도 혁신파로 분류 가능하다. 파시즘 사상을 공부한 고노에 후미마로로 민간 정치인 계열의 혁신 우파였다고 할 수 있다.
혁신파 사상가들은 세계가 엄청난 역사적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고 믿었다. 프랑스 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자유의 시대가 황혼기에 도달했다.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국방국가" "전체주의""신질서"가 될 것이라 그들은 전망했다. 이 개념들은 당대의 유럽 우익 사상에서 탄생했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민족 공동체가 개인주의에 승리할 것이며, 국가 기획이 자유 시장의 경쟁을 압도하며, 단일 정당 조직이 다원적 정당정치를 대체할 것이라 그들은 믿었다.
하지만, 일본의 혁신파들은 유럽 파시즘의 대중운동적 성격은 무시했고, 대신에 독일과 이탈리아 체제의 경제,군사적 업적만 수용하려 했다. 그들은 대중이라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아니라, 엘리트가 관리하는 국가가 역사적 변화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패한 자유주의 국가 혹은 계급 기반의 사회주의 국가와 다르게, 파시스트 국가는 계급을 초월한 국가가 될 것이며, 국익을 실현한다는 것이었다. 파시즘은 공공선을 위해서 대중을 결집시키고, 그 결과 자유주의 사회의 소모적,낭비적 경쟁을 보다 우월한 신 질서로 대체한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혁신파 사상가들은 독일,이탈리아,일본이라는 부상하는 파시스트 국가들이 쇠락하는 자유주의 사회에 대해 군사적 승리를 거둘 것이라 기대했다.
마침내, 독일이 1940년 봄 서유럽을 석권했을 때, 전세계 파시스트들의 꿈이 실현 직전인 것처럼 보였다.
참고-
Cyprian P. Blamires, WORLD FASCISM -A HISTORICAL ENCYCLOPEDIA,ABC-CLIO,2006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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