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익 대대장 시절의 일본 제1사단?"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홍사익은 조선 출신 일본 군인으로, 일본 육군 중장까지 진급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 필리핀 마닐라 국제 군사 재판에서 전범으로 처형되었다. 

홍사익은 일본 육사와 일본 육군대학을 졸업한 유일한 조선 평민 출신 군인이었다.

1930년 3월 홍사익은 제1사단 제3연대 3대대장에 임명되는데, 당시 1사단은 육군 엘리트들의 집합소였다.

홍사익의 직속상관 제3연대장은 통제파의 대부가 되는 나가타 데쓰잔이었다. 5개월 뒤인 30월 8월의 정기인사로, 나가타 데쓰잔은 육군성 군사과장이 되었다. 후임 연대장은 야마시다 도모유키였다. 야마시다는 이후 황도파의 핵심이 될 것이었다.

당시 1사단의 사단장은 황도파의 핵심 보스가 되는 마자키 진자부로였다. 그리고 1사단의 1연대장은 도조 히데키였다. 

같은 기간 동안 마지키와 도조는 청년장교 운동을 두고 갈등했다. 전자가 청년장교들을 지지했다면, 후자는 비판적이었다. 

당시에 도조는 이렇게 말했다.

도조, “군인은 군대 이외의 집회나 회합에 나가서는 안 된다. 기타 잇키, 오카와 슈메이, 니시다 미쓰기 등의 선동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1)

도조 ,“쿠데타를 일으키자고 말하는 무리와 함께 모여서는 안 된다. 과격한 행동은 단호히 배격하고,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수단에 의지해야 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나가타 선생을 중심으로 한 우리들의 시대가 올 것이다. 그 때부터 모든 일을 시작하자.”고 설득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2-26사건에 가담하는 구리하라 야스히데와 고다 기요사다는 도조 휘하의 중대장이었다. 3) 

홍사익도 3대대장으로 근무하면서, 2-26사건과 간접 관련을 가지게 되었다. 대대장 시절 홍사익의 직속부하는 안도 중위였다. 안도는 홍사익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안도는 후에 2-26사건의 주모자가 될 것이었다. 4)

1) 호사카 마사야스,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 페이퍼로드, 2012. 116.

2)호사카 마사야스,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 페이퍼로드, 2012. 118.

3) 호사카 마사야스,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 페이퍼로드, 2012. 114.

4)송건호, 〈홍사익중장의 평전〉, 국사편찬위원회, 《국사관논총 제28집》 (국사편찬위원회, 1991)
        



덧글

  • 진보만세 2019/02/18 14:44 # 답글

    도조의 견지에서 보면 후일 5.16에 육사 생도를 동원하며 강영훈 교장과 충돌한 전두환 필두의 하나회는 용서가 안되는 사조직이었을듯.. 그 5.16 핵심은 정작 2.26을 모델로 삼았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네요..
  • 파리13구 2019/02/18 15:28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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