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마이클 반하트는 태평양전쟁 연구사를 정리하면서 다음을 지적했다.
30년대 일본은 거의 비합리적인 급진파들이 혐오스러운 서양에 대해서 비합리적인 행동을 일삼던 자들이 엘리트였던 나라였다. 영국 혹은 미국과의 갈등에 반대한 온건파 지도자들은 ,예컨대 대장대신 이노우에 준노스케와 통제파 대부 나가타 데쓰잔 같은 자들은 암살당했다. 암살의 운명을 피한 다른 고위 지도자들이 일본을 영미와의 전쟁으로 나가게 만들었다.
비합리적인 일본론을 주장하는 관점이 주목하는 것은 30년대 급진파들이다. 육군 청년장교들과 서양에 대한 그들의 불만이 주요 연구 주제가 되었다. 본토에서의 산업화,자본주의,자유주의의 해악이 초래한 변화에 분노한 청년 장교들은 "쇼와유신"을 주장했다. 19세기 말의 메이지 유신 처럼, 쇼와유신 운동은 일본제국에서 부패 세력을 일소하고, 더 나은 일본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관련 주요 연구들은 다음과 같다.
Hugh Byas, Government by Assassination (New York: Alfred Knopf, 1942).
Yale Maxon, Control of Japanese Foreign Policy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57)
Richard Storry, The Double Patriots (London: Chatto and Windus, 1957).
Ben-Ami Shillony, Revolt in Japan: the Young Officers and the February 26, 1936 Incident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3)
Richard J. Smethurst. A Social Basis for Prewar Japanese Militarism (Berkeley: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4).
출처-
Michael A. Barnhart (1981) Japan's economic security and the origins of the pacific war, Journal of Strategic Studies, 4:2, , 105-106.
덧글
경우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생각 외로 비뚤어진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