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지마 류조, 30년대초 육군은 왜 분노했는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세지마 류조는 일본 육군 장교로 한국과의 인연이 각별하다. 
박정희의 존경을 받았고,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정치 자문을 했고, 삼성 이병철의 절친이었다. 

세지마 류조는 1932년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당시는 일본 육군의 청년장교 운동이 가장 과격했을 때였다. 세지마가 만약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그는 1936년 2월 26일에 가담하여, 처형당하는 비극적 운명을 가지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불운은 이후에 닥치게 될 것이다. 그는 종전 이후 소련군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에서 11년간 포로생활을 하였다.

육사 졸업 이후, 그는 35연대 신병교육 담당 장교로 근무하면서, 느낀 점을 이렇게 기록했다. 이는 세지마 세대의 청년장교들이 같이 경험한 공통분모였을 것이다.  

"내 지휘하의 새로 징병된 병사들의 절반은 빈농, 가난한 어부 집안 출신이었다. 몇몇 경우 빚에 쪼들린 집안은 가장 나이어린 여동생들을 매춘부로 팔아 넘겼다. 
나는 신문을 통해서, 내 조국의 심각한 내적,외적 문제를 접했고, 재벌이 외환 투기로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거나 혹은 정치의 부패 같은 기사들을 읽게 되었고, 그 결과 나의 사회관도 변했다. 
그렇다고 내가 맑스주의 혹은 기타 잇키의 국가개조 사상에 끌렸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소임은 신병 교육이었고, 단지 나는 세상이 정의롭지 못하데 굴러가고 있다는 인상을 가졌고, 부자와 빈자 간의 엄청난 격차가 존재하며, 정치에 도덕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점점 나는 사회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 점을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점이 다소 신병들에게 전달되었고, 나는 헌병대의 경고 편지를 받기도 했다. 
당시의 상황을 회고할 때, 나는 왜 나의 수많은 일본 육사 동기들이 1936년의 2월 26 사건에 가담하게 되었는지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출처-

CARTER J. ECKERT, PARK CHUNG HEE AND MODERN KOREA -The Roots of Militarism 1866–1945 ,187.


덧글

  • 진보만세 2019/02/16 18:47 # 답글

    한일 가릴 것 없이, 한 때 양국의 기업임원들 필독서로 잘 팔리던 야마사키 도요코 소설 '불모지대'의 주인공 이키 타다시의 실제 모델로도 널리 알려졌지요..

    글 하단. 세지마의 감상을 보니 왠지 전태일 사후 현실참여와 입신양명의 갈래 길을 두고 갈등했던 학생운동가들의 고뇌와도 일맥상통하는 느낌입니다..
  • 파리13구 2019/02/16 18:49 #

    우파스러운 고민은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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