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일본 육군 중령 아이자와 사부로가 나가타 데쓰잔을 참살한 직접 이유는 나가타의 황도파의 지도자 마자키 진자부로를 육군 교육총감에서 몰아내는데 중심에 섰다는 이유에서 였다.
아이자와 재판이 진행되면서, 변호인단은 마자키와 접촉, 변론을 요청했고, 그가 수락했다.
아지자와에 대한 마자키의 입장은 그와 고다 대위와의 대화에서 드러났다. 마자키는 아이자와가 위대한 사람이라고 칭송했고, 나가타 살인 동기에 대해서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재판의 민간 변호인 우자와 후사아키는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선수를 치려했다. 1936년 1월 12일, 그는 전직 육군대신 하야시와 만나서, 아이자와에 대한 천황의 사면을 제안했다. 재판의 반향을 걱정한 하야시의 답변은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사면은 실현되지 않았다. 육군 통제파가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출처-
Shillony, Ben-Ami. Revolt in Japan :the young officers and the February 26, 1936 incident. Princeton University Press , 1973, 1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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