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히토와 파시즘?"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오늘의 우리는 히로히토를 파시스트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히로히토는 파시즘을 우리와는 다른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히로히토에게 파시즘은 무엇이었는가?

허버트 빅스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

1932년의 5월 15일 사건으로 청년장교들에 의해서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가 잔인하게 암살당하고, 후임 총리를 물색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당연히 히로히토는 ‘파시즘에 가까운 사상을 지닌 사람’ 을 선택하는 것을 배제했는데, 파시즘에 가까운 사람이란 암암리에 새로 임명된 추밀원 부의장 히라누마 기이치로를 가리켰다. 반민주주의적 우익 압력단체이면서도 정치의 주류 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국본사國本社의 총재,히라누마는 헌법 개정을 주장했다. 그는 스스로 내각을 꾸리고 싶어했고 모리 쓰토무가 그를 지지했다. 민간 우익 활동가들은 벌써부터 히라누마를 궁중 관료로 들여보내려 압력을 넣고 있었고, 추밀원과 군부, 민간 우익 결사에도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았다. 노련한 원로인 사이온지는 말할 것도 없고 히로히토와 그 측근들이 히라누마를 반대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러나 1932년, 일본인들 대부분에게 ‘파시즘’ 이란 낱말은 막연하고 알쏭달쏭하며, 주로 이탈리아에 대해 언급할 때 쓰이는 말이었다. 히로히토가 ‘파시즘’ 을 부정하는 것도 자신의 측근들을 비판하고 메이지 헌법 체제를 변혁하고자 하는 자는 정치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신념에서 나온 것이었다. 히로히토는 총리로서 안심 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설령 총리가 파시즘 사상을 지녔다 할지라도 절대적으로 충성하고 또 순종하며, 쿠데타에 의한 변혁에 반대하는 한 천황은 만족할 수 있었다. 

허버트 빅스, 히로히토 평전-근대 일본의 형성, 삼인, 2010. 292-293.
 





덧글

  • 진보만세 2019/02/15 11:22 # 답글

    '세습군주제의 왕족이란 것들은 십중팔구 구멍가게 하나 운영하지 못할 작자들이다'라는 히틀러의 발언을 들은 것은 아닐지..^^
  • 파리13구 2019/02/15 11:23 #

    도조 히데키가 반박합니다.

    하사관 출신이 전략을 알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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