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 만주사변, 1931년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31년에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벌집을 건드린 것이나 다름 없었다. 

우선, 중국인을 화나게 만들었다. 만주 군벌 장학량은 국민당의 장개석 편으로 안길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둘째, 이른바 일본 국내정치에서의 시데하라 외교를 끝장내면서, 일본 정책의 선택지를 좁혔다.

셋째, 만평에서 보듯, 켈로그-브리앙 조약을 위반했다. 

켈로그-브리앙 조약/ 부전조약- 1928년 8월 27일. - 전쟁을 국가의 정책수단으로 삼는 것을 포기한다는 약속이었다.  실제로, 미국의 스팀슨 국무장관은 일본을 켈로그 조약 위반으로 제소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넷째, 1922년 워싱턴 9개국 조약(중국에 관한 9개국 조약)을 위반했다. 일본은 9개국 조약에 서명하면서, 중국의 영토주권을 존중하기로 약속했었다. 만주사변은 9개국 조약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다섯째, 일본 천황의 통수권을 침해했다. 만주사변 발발과 함께, 천황을 위시한 도쿄의 중앙정부는 사태의 불확대 원칙을 정했다. 하지만, 만주의 관동군은 이를 무시하고, 만주 전역을 점령했다. 이는 하극상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31년의 일본 제국은 한번의 전투에서만 이겼을 뿐이며, 큰 전쟁에서의 승패는 미지의 영역에 남겼다. 그 결과는 이제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일본은 만주를 얻고, 제국을 잃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