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잇키에게 생활비를 준 것은 누구인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혁명가에게 윤리란 무엇인가? 혁명에는 윤리도 타도 대상인가? 자신이 타도해야 할 적으로부터 돈을 수수하는 행위의 도덕성은 혁명가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가?

쇼와 유신의 사상을 만든 급진 사상가 기타 잇키의 주요 주장들 중 하나는 재벌 타도였다. 

타도라는 구호에도 불구하고, 기타 잇키에게 자금을 지원한 것은 또한 재벌이었다.

1931년 12월, 일본 재벌 미쓰이 그룹 경영진 아리가 나가부미가 기타 잇키를 소개받았다. 이후에 아리가는 기타의 집을 방문, 기타에게 2만-3만 엔 가량을 주면서, 미쓰이 최고경영자 이케다 시게아키에게 해를 입히지 말것을 부탁했다. 

2-26사건 이후, 이케다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은 1932년 말에 아리가의 소개로 기타 잇키를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때로 기타를 만나, 청년장교운동의 동향을 파악했다고 한다. 

1934년에 기타는 증언을 통해서, 이케다로부터 매년 2만 엔을 받았고, 결제는 연중과 연말에 집행되었다. 이 돈을 통해서 기타는 아내와 입양한 중국계 아들을 부양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3명의 가정부와 기사를 고용할 수 있었다. 1935년에 이케다는 기타에게, 5천 엔을 추가로 지불했고, 이 돈으로 기타는 새 집으로 이사했다. 새 집에는 전화기가 있었고, 기타는 중국 여행을 계획했다. 

미쓰이 그룹으로부터 기타가 받은 돈의 일부는 그의 제자인 니시다 미쓰기에게 전달되었다. 니시다는 당시 소득원이 없었다. 그리고 이 돈의 일부는 니시다를 통해 청년장교 운동에 전달되었다. 

후에 미쓰이의 이케다는 기타와 청년장교 운동에 대한 자금전달은 정보 수집을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이는 테러리스트를 매수 위한 자금이 분명했다. 일본의 제2대 재벌이었던 미쓰비시는 급진 우파 세력에게 자금을 주지 않았다.

아무튼, 이후에 돈은 힘을 발휘했다. 1936년 2월의 반란 세력이 거사 당일의 암살 대상 명단을 작성할 때, 기타 잇키가 개입해서 미쓰이의 이케다의 이름을 제외할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이케다의 이름은 혁명의 최종 단계에서의 처형 대상자 명단에 들게 되었다.  2-26 거사 소식은 이케다에게 미리 전달되었고, 전 날에 이케다는 도쿄를 탈출했다. 


출처-

Shillony, Ben-Ami. Revolt in Japan :the young officers and the February 26, 1936 incident. Princeton University Press , 1973, 86.




덧글

  • 진보만세 2019/02/14 13:13 # 답글

    어째 깡패 김두한이 반공한다면서 화신재벌 박흥식 삥뜯던 일화가 떠오르는.. 우익결사는 역시 일본이 갑인가 봅니다..
  • 파리13구 2019/02/14 13:14 #

    편의주의로 볼 수 있습니다.

    돈은 뜯고, 나중에 죽이면 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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