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네빌 체임벌린은 반미, 친일파였는가?" Le m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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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영국은 극동에서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부상에, 유럽에서 히틀러의 나치 독일의 위협에 직면했다.  

당시 영국 재무장관이었던 네빌 체임벌린은 독일의 위협과 일본의 부상에 대한 국방 계획 마련을 요구했다. 

재무장관으로 영국 국방비 절감을 위해 고심하던 체임벌린은 극동에서 일본과의 타협이 예산 절감을 위해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영국은 대공황의 타격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경제가 군비 대축의 대폭 증가를 감당할 수 없었을 뿐만아니라 국내정치도 세금 감면 그리고 공무원 임금 삭감을 요구했다. 재무부는 해군 예산 삭감이 불가피하다고 보았고, 일본에 대한 유화는 이 목적에 부합되었다.

34년에 체임벌린이 영일 불가침 조약을 제안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였다. 재무성 파의 수장 체임벌린은 영국 안보에 대한 핵심적 위협은 유럽에 존재하며, 국방예산 배분은 바로 이러한 인식에 기초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경제적 여건이라는 관점에서, 일본과의 유대가 아시아에서 영국의 국방 이익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체임벌린에 따르면, "영일동맹의 종료는 일본에게 상처를 주었고, 영일관계 발전을 방해했다." 다가오는 해군 군축회의에서, 미국은 일본의 해군력 보유 비율 수정에 대한  요구에 대해서 영국이 반대할 것을 요청할 것이 명약관화했다. 체임벌린에 따르면, 만약 영국이 미국의 입장만을 두둔한다면, 일본인의 감정이 격앙되어, 극동의 상황은 불 위에 기름을 퍼붙는 것과 유사하게 될 것이라 체임벌린이 경고했다. 

이렇게 1934년의 네빌 체임벌린은 친일, 반미파로 간주될 수 있다. 


참고-

Hosoya, Chihiro. "The 1934 Anglo-Japanese Nonaggression Pact."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 25, no. 3 (1981) 494-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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