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에티오피아에 대한 일본제국의 야심? ^^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오늘날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과 투자가 화제지만, 1930년대에는 그 주체가 일본이었다. 

1930년대 초에 일본과 에티오피아의 관계는 말그대로 뜨거웠다. 양국은 각각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서양 강대국을 무력으로 격퇴한 공동의 경험을 공유했다. 에티오피아가 1896년에 아두와 전투 Battle of Adwa 에서 이탈리아에게 치욕을 안겼다면,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다. 

양국은 1930년에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다음해에 에티오피아가 자신의 잠재적인 아시아 동맹국 일본에 헤루이 셀라시 Heruy Wolde Selassie 외무장관을 보냈다. 

일본에서 헤루이는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특히 일본의 극우파 민족주의자들이 열광했다.  그들은 유색민족의 동맹을 꿈꾸었고, 에티오피아가 좋은 상대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양국의 우호관계 발전은 당시에 에디오피아 왕자와 일본의 공주가 결혼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실제로 혼담이 오갔다. 일본 측의 여주인공은 공주가 아니라 일본 귀족의 딸, 구로다 마사코 Ms. Kuroda Masako 였다. 마사코는 에티오피아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이민을 생각하고 있었다. 


위의 사진의 왼쪽 여성이 구로다 마사코였다. 그리고 오른쪽 사진의 앞열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남자가 에티오피아 왕자 아라야 아베베였다. 

불행히도, 이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다.

1930년대에 일본이 아프리카 대륙 진출에 관심을 보이고, 특히 일본-에티오피아 관계가 발전하자 유럽인들과 남아프리카의 백인들이 긴장했다. 그들이 내세운 것은 황화론 ‘Yellow Peril’ 이었고, 이는 일본의 아프리카 침투를 견제하기 위해서 였다. 

일본-에티오피아 친선에 이탈리아가 매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시스트 국가들 간의 연대가 발전하면서, 결국 일본-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에서의 이해의 충돌을 끝내기로 결정하게 되었고, 남아프리카에서의 반일 감정이 영일관계에 악영향을 행사했다. 

무솔리니가 에티오피아를 침략하기로 결심한 것도 일본에 대해서 선수를 치기 위해서 였다는 해석이 존재한다. 

참고-

Richard Bradshaw and Jim Ransdell, 'Japan, Britain and the Yellow Peril in Africa in the 1930s,' The Asia-Pacific Journal Vol 9, Issue 44 No 2, October 3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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